전기차 '에너지등급제' 시동...완성차 "시기상조"

에너지공단 '도입 방안' 첫 연구 보고서
"전비 향상 등 기술개발 촉진 효과 기대"
완성차 "아직 차종 적어…수치 무의미"
등급제 도입 시 '정책 인센티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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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기차 라벨. 전비와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표시하고 있지만 등급제는 따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와 관련해 공공기관이 위탁한 첫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소비자 대다수가 등급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아니라 전비만으로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완성차 업계는 아직 전기차 차종이 적은 만큼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이른 도입은 자칫 시장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검토할 방침이다.

서울과기대 산업협력단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이 발주한 '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 도입 연구 방안' 용역을 수행하고 최근 보고서를 제출했다.

서울과기대가 전기차 동호회 회원 등을 대상으로 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 도입의 필요성을 0~5점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1%(275명)가 최고점인 5점을 부여했다. 3점 이상을 부여한 응답자는 75%에 달했다. 0점을 부여한 응답자는 14%에 그쳤다. 현재 양산되고 있는 전기차의 전비는 3~7㎞/㎾h로 차량별로 최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를 도입하면 완성차 업체의 전비 향상과 관련해 기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실제 내연기관차는 정부가 1992년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를 시행한 효과를 누렸다. 연비 1등급 자동차의 점유율은 2004년 4.9%에서 2010년 37.6%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배터리 용량에 비례해 증가하고, 전비와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승용·화물 전기차 모두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전비 간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전비만으로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소비자 대부분은 전기차 구매 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는 등급제 시행에 부정적이다. 업계는 서울과기대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아직 차종이 많지 않아 평균 전비를 계산하더라도 유의미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또 환경친화적 자동차 요건을 충족한 차량에 대해 등급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등급제 도입 시 정책 인센티브도 요구했다.

보고서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요건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 시행방안(1안)과 전기차 기술 발전을 고려해 2023년, 2025년 시행방안(2-1, 2-2안) 등 세 가지 안을 제안했다. 1안은 출시 차종이 적은 초소형, 경형, 화물차 적용을 일정 기간 보류한다는 게 특징이다. 1안은 1등급 기준이 6.1㎞/㎾h로 가장 낮지만 국내 판매 차량 가운데 2대(3%)만 이를 충족했다. 3등급(5.2~4.5㎞/㎾h) 차량이 31대(33%)로 가장 많았고, 5등급(3.6㎞/㎾h 이하) 차량은 12대(13%)로 나타났다.

정부는 당장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를 도입하진 않는다는 방침이다. 오는 2025년까지 친환경차 283만대, 2030년까지 785만대를 보급한다는 공격적 목표치를 세운 만큼 규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유럽,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도 등급제를 시행하는 곳이 없다.

김호성 산업부 에너지효율과장은 15일 “당장 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제를 도입할 계획은 없지만 미래를 대비해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면서 “현 상황에서 등급제를 도입할 경우 전기차 보급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고, 여러 부처와 협의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표>전기차 에너지소비효율 도입안

* 1안은 초소형, 경형, 화물차의 경우 출시 차종 증가 시까지 보류

전기차 '에너지등급제' 시동...완성차 "시기상조"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