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위성 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첫 시험발사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당초 목표대로 비행을 마쳤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3단 엔진이 예정보다 먼저 연소를 끝내면서 위성 모사체(더미)가 상공 700km 지점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성공률이 30%도 채 되지 않는 첫 시험발사의 벽을 완전히 넘지는 못했지만 기술은 완성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비행·엔진분리는 완벽
누리호는 이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오후 5시, 비행시험에 나섰다. 최종 목표는 지상 700㎞ 궤도에 위성 모사체(더미)가 진입하는 것. 누리호는 75톤급 액체 엔진 4기가 '클러스터링'으로 묶인 1단부, 추력 75톤급 액체 엔진 1기가 달린 2단부, 추력 7톤급 액체 엔진이 달린 3단부로 구성됐다. 실용위성이 아닌 위성 더미를 실었다.
상공으로 이륙한 누리호는 127초 후 59㎞ 지점에서 추진력을 추가로 얻기 위해 1단을 분리했다. 233초 후에는 고도 191㎞에서 위성 더미를 보호하는 덮개(페어링)가 분리됐다. 274초가 지나 고도 258㎞에서 2단 엔진이 모두 연소해 분리됐다. 이후 3단 엔진의 작동이 예정보다 먼저 에 멈추면서 위성 모사체가 7.5㎞/s의 속도를 내지 못해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누리호 발사 결과 브리핑에서 “오후 5시 발사된 누리호의 전 비행 과정이 정상적으로 수행됐다. 다만 위성 모사체가 700㎞의 고도 목표에는 도달했으나 모사체가 초당 7.5km의 목표 속도에는 미치지 못해 지구 저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종 목표엔 이르지 못했지만 첫 발사시험에서 별다른 이상 없인 목표 지점까지 비행한 것만 해도 성공적 시도였다는 평가다. 2000년대 자력으로 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나라의 첫 시험발사 성공률은 27%에 불과하다.
윤영빈 서울대 교수는 “이륙 직후부터 각 단 분리, 페어링 등 주요 과정은 제대로 이뤄졌다”며 “3단 엔진이 예정보다 먼저 연소를 멈춘 것은 비교적 해결이 쉬운 이슈로 두 번째 발사에선 무리없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위성 자력발사 및 우주 수송 능력 확보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향후 반복 발사를 통해 기술, 신뢰도를 고도화하면 위성은 물론 달 탐사선 등을 우리 힘으로 우주로 보낼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위성 자력발사 능력을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 미국, 유럽(프랑스 등),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 9개국이다. 이 가운데 1톤 이상 실용급 위성을 자력 발사할 수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 이란, 북한을 제외한 6개국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Ⅰ)' 발사에 성공했다. 핵심 기술인 1단 로켓은 러시아제를 사용해 우리나라는 위성이 탑재된 8톤급 2단 로켓만 개발, '자력'이란 단어를 붙이지 못했다.
◇발사체 주요 설비 및 소재 기술 확보
비록 완벽한 성공을 이르지 못했지만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적지 않다. 누리호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순수 우리 기술로 진행됐다. 75톤급 엔진은 개발 초기에는 기능과 성능 위주로 설계해 목표대비 25% 무겁게 설계됐지만 반복 엔진 연소시험 등을 통해 엔진 기능과 작동 환경에 대한 데이터 축적, 무게 감량을 위한 설계 개선, 구조 해석, 경량 소재 등을 적용, 감량에 성공했다.
핵심 기술로 일컬어지는 클러스터링 등 발사체 관련 다양한 제반 기술도 확보했다.
클러스터링은 엔진을 묶는 기술이다. 4개 엔진 정확한 정렬과 균일한 추진력을 내는 것이 관건이다. 높은 기술 난도를 해결하기 위해 정교한 설계와 높은 수준의 지상 시험을 수차례 거쳤다. 클러스터링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은 △엔진 화염 가열 분석 및 단열 기술 △엔진 간 추력 불균일 대응 기술 △엔진 4기 조립, 정렬 및 짐벌링(방향제어) 기술을 모두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리호 발사 이후 75톤급 엔진 성능 개량 및 클러스터링을 통해 대형·소형 발사체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우주발사체 엔진개발 설비 및 대형 추진제 탱크 제작 기술과 발사 인프라 구축 기술도 자력으로 확보했고 관련 시험설비도 구축했다. 연소기, 터보펌프, 가스발생기 등 액체엔진 및 주요 구성품을 개발하려면 시험설비가 필수인데 누리호 개발 초기, 러시아 시험설비를 임차해 제한적으로 시험을 진행했다.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엔진 및 추진기관 시험설비 구축에도 상당 투자를 진행, 현재 안정적으로 엔진·추진기관 연소시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추진기관 시험설비는 극저온 유체, 초고압 정밀 제어 및 공급기술이 적용됐다. 최대 150톤 추력과 고도 20km에 해당하는 55mBar 진공 모사 환경을 구축,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의 시험설비와 대등한 수준의 시험설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들 설비는 누리호 개발 이후, 차세대 발사체에 필요한 엔진 성능 개량에 활용될 자산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