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일본 수출 규제와 불소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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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준 한국화학연구원 계면재료화학공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최근 유럽연합(EU)에서 2035년부터 EU 내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 결정에 따라 2035년부터 EU에서는 탄소 배출이 없는 무공해 자동차(Zero Emission Vehicle)만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대비해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전기차와 수소차 관련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연료전지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핵심 화학소재는 무엇이 있을까? 정답은 바로 '불소소재'다.

불소소재는 다른 어떠한 물질·소재·재료로도 대체 불가능하며, 매우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섬유, 기계, 자동차, 건설 등 전통산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태양전지, 수소 연료전지, 항공우주 등 국가주력 및 기간산업 핵심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전자기적 특성 때문에 IT 분야 5G, 6G 산업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소재다.

불소가 포함된 화합물은 유사한 구조를 갖는 탄화수소 화합물에 비해 최소 10배에서 1만배 높은 가격을 형성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으며, 우라늄 농축 등 무기 산업에 필수이므로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전 세계 불소학회에는 중국, 미국, 영국 등 자체 개발 가능한 경제규모 선진국들이 주로 참석하고 있다. 따라서 자체 개발을 통한 기술 자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산업에 필요한 불소소재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자체 개발하는 방법 대신 핵심 불소소재를 주로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산업에 활용했다. 불소소재와 같이 매우 중요한 핵심소재 기술의존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고 또 일부 국가에 대한 기술자립을 위해서는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가 필수적임에도 대비하지 못했다.

결국 2019년 7월 1일 일본 정부가 불소소재 관련 3대 소재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정부 주도로 불소소재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히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본 수출규제 2년 만에 3대 품목 중 불화수소 대일 수입액이 6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고, 불화폴리이미드는 대체소재(UTG)를 채택해 대일 수입이 사실상 '0'으로 전환되는 등 특정 국가 의존에서 탈피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술자립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큰 위기를 산·학·연·관 협업을 통해 극복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불소소재 산업 태동 이래 40여년이 지났다. 기술 성장기 상 유소년기를 지나 청장년기에 접어들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도 응용소재인 기능성 코팅제 제조기술 연구를 시작으로 불소소재의 공급망 연결 및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국내 공백 기술이며 일본 수출규제 시 문제점으로 부각됐던 불소 단량체, 고분자 및 이를 활용한 기능성 코팅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불소산업에서 그동안 힘들게 축적된 국내 기술들은 아직 세계 최고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 일류 국가와 경쟁할 만한 경험과 기반이 갖추어졌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기간산업에 필수인 불소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명확한 불소산업 발전전략 아래 꾸준한 예산 지원 및 지속적 연구개발(R&D)이 요구되며, 특히 관련 부품장비 산업 연계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미래 산업 발전에 필요한 불소소재를 자체적으로 원활히 공급하는 날이 조속히 오길 바란다.

박인준 한국화학연구원 계면재료화학공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ijpark@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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