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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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은 사직단(社稷壇)이 있는 동네다

‘종묘와 사직에 의하면...종묘와 사직을 걸고...’ 실록과 사극에 언제나 듣던 멘트다. 종묘는 보이는데 사직단은 어디에 있을까? 종묘만큼 사직단도 중요하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우리에게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은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사직단은 종묘보다 더 중요한 공간이다. 600여 년 전 왕은 살아서 궁(宮)에, 죽어서 능(陵)에 그리고 영혼은 종묘(宗廟)에 모셨다. 그러나 백성이 없는 왕이 무슨 소용일까?

농경사회 시절 백성은 땅에 씨를 뿌리고, 거두면서 삶을 일구었다. 땅은 ‘밥이고, 약이고, 꿈이고 곧 삶’이었다. 이처럼 사직단은 백성을 위한, 백성들의 편안한 삶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공간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요, 왕은 그다음인 것이다. 다시 말해 땅이 없는 나라가 없듯, 곡식이 없는 경제와 경영이 무슨 의미일까? 땅이 있는 곳에 물이, 토지와 곡식이 있는 곳에 사직단은 필수불가결한 공간이었다. 서울에도, 부산에도, 광주에도 그리고 남원과 산청 지나 천안에도 열린 공간인 사직단이 있고, 사직동(社稷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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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으로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이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국가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한 나라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곳은 종묘가 아닌 사직단이다. 경복궁에서 걸어서 10여 분이면 사직단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길이 있는 서촌의 시작점이다. 인왕산 아래 한양도성의 서쪽에 가면 새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구름 흘러가는 소리만 사직단 안에 있다. 경복궁과 경희궁 사이, 사직터널 가기 전 사직단이 오롯이 있다.

이곳에서 왕과 대신들이 땅을 중시하며 기우제와 기청제 그리고 기곡제를 지냈다.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얼이 깃든 신성한 공간이 사직단이요, 사직동이다. 도성 안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 도성 밖 과거와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이곳은 100년 후에도 사직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직단이 있는 동네, 역사의 흔적이 있는 동네, 행복과 행운이 가득한 그곳!

오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마지막 폭염과 함께 ‘사직동’을 걷고 싶다. 행복한 걷기로 소소한 호사를 누린다. 행복한 걷기는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다. 길은 없다. 당신의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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