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공급 부족 현상이 반도체를 넘어 세계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파운드리는 칩을 설계하는 회사(팹리스)의 반도체를 대신 만들어주는 사업을 말한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요 증가로 더욱 많은 반도체가 필요해지면서, 파운드리 업체들은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은 지속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681억달러)보다 8.4% 증가한 738억달러(약 81조원)로 전망된다.
국내는 삼성전자,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IC, 키파운드리 4개 업체가 있다. 이들 업체가 최근 공급 부족 현상에 대응해 어떤 전략을 펼칠지에 업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에 국내 파운드리 업체 특징과 전략을 분석하고,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 대만의 산업 생태계와 비교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삼성전자, 첨단 공정과 생산 능력으로 '시스템반도체 2030 1위' 도전
삼성전자는 국내 파운드리 업체 중 규모와 매출 모두 압도적인 1위다. 특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12인치 웨이퍼용 파운드리 공정을 확보했다. 기술도 세계 '톱 클래스'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말 세계에서 처음으로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을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평택 2공장을 중심으로 5나노 파운드리 라인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12인치 웨이퍼 기준 5나노 공정만 월 4만8000장(48K) 규모 라인을 확보할 계획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EUV 기술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를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삼성전자는 화성과 미국 오스틴에도 12인치 팹을 두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삼성전자의 12인치 파운드리 생산능력은 월 25만장(250K)가량이었으나 올해 말까지 33만장(330K)으로 늘어날 계획이다.
최근 업계 최대 관심사는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투자 여부다. 최근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 라인 투자를 결정하면서 삼성전자가 14나노 공정 위주인 오스틴 공장에 EUV 팹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오스틴 공장 주변 부지를 추가 구입한 뒤 텍사스주에 용도 변경을 신청했다.
삼성전자는 8인치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기흥 공장을 중심으로 8인치 웨이퍼 30만장 생산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각종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패키징 솔루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DS부문 내 TSP(테스트&시스템 패키지) 총괄조직에서는 패널레벨패키지(PLP) 등 다양한 차세대 패키지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국내 다수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업체와의 협력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생태계 확보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라는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에서 에이디테크놀로지, 코아시아, 가온칩스, 세미파이브, 하나텍 등 14개 업체가 삼성전자 파운드리 고객사에 각종 칩 설계 솔루션을 제공한다.
◇국내 최초 '퓨어 파운드리' DB하이텍
DB하이텍은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파운드리 시장 10위권 안에 드는 회사다. 8인치 파운드리가 주요 비즈니스다. 경기도 부천에 본사를 둔 DB하이텍은 충청북도 음성에 위치한 상우 팹까지 8인치 웨이퍼 기준 월간 12만9000장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DB하이텍은 국내 최초 파운드리 회사다. 1997년 모회사인 DB그룹(옛 동부그룹)이 동부전자를 설립했다. 전력반도체, 이미지센서 등을 주로 생산한다.
DB하이텍은 설립 초기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창업주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의 각별한 관심 속에서 차근차근 기술을 키운 DB하이텍은 2014년 처음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DB하이텍은 9359억원 매출과 2393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5.5%에 달한다.
올해에도 밀려드는 주문량에 힘입어 매출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수주잔고는 전체 생산능력과 맞먹는 월 9만6000장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파운드리 주문도 6개월가량 밀려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DB하이텍의 매출 증대는 중국 칩 설계 시장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DB하이텍 매출의 55.5%는 중국에서 발생했다. 두 번째로 높은 한국에서의 매출보다 4배 높은 수치다.
DB하이텍 이슈는 '증설'이다. 8인치 파운드리가 극심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가운데 회사가 새로운 생산 설비를 구축할 것인지 주목된다.
현재 DB하이텍은 팹 내에도 유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상우 팹에는 8인치 웨이퍼 기준 월 5만장, 12인치 기준 약 2만장가량 설비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DB하이텍은 8인치 파운드리 장비의 희소성과 팹 내 감가상각비 등을 고려해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은 최근 팹 증설에 대해 “실력을 더 쌓은 다음 증설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시스템IC, 우시 이설 후 중국 시장 노린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2017년 공식 출범한 SK하이닉스의 자회사다. SK하이닉스 청주 사업장의 8인치 사업장을 분리해서 만든 회사다. 110나노 공정을 보유하고 있고, 아날로그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국내 주요 고객사로 실리콘웍스, 실리콘마이터스 등이 있다. 이들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파워반도체를 주로 만드는 팹리스 회사다.
이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 우시에도 신설 법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8년 중국 우시 정부 투자회사 우시산업집단과 합작 법인을 설립, 지난해 새로운 팹을 준공했다.
현재 청주 M8에 있는 설비들을 한창 우시로 이설하고 있다. 장비 이설은 내년 초 100% 완료될 예정이다. 생산은 중국에서, 연구개발은 한국 본사에서 진행하는 이원화 체제를 갖출 전망이다.
M8과 우시 공장을 합친 회사의 생산능력은 8만5000장가량으로 알려진다. 이설이 진행되는 중에도 국내와 우시 공장 일부에서 장비를 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중국으로 설비를 이전하는 이유는 중국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노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 현지에는 현재 1500개 이상 팹리스가 있어 8인치 파운드리 사업 덩치를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이미 회사는 8인치 파운드리 공급부족 현상에 힘입어 큰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7030억원으로, 2019년(6615억원)보다 400억원 이상 오른 실적을 기록했다.
◇키파운드리, 40년 노하우 앞세워 아날로그 반도체 제조
키파운드리는 지난해 9월 공식 출범했다. 키파운드리 전신은 매그나칩 파운드리 사업부다. 1979년 LG반도체에서 시작한 뒤 하이닉스반도체, 매그나칩반도체를 거쳐 독립 파운드리 서비스를 운영하게 된 잔뼈 굵은 회사다.
지난해 3월 국내 사모투자펀드운용사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가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사업과 청주공장(팹4)를 인수하면서 키파운드리가 탄생했다. 이 펀드에는 SK하이닉스도 참여해 화제가 됐다.
키파운드리 청주 공장 생산 능력은 8만2000장 수준으로 알려진다. 주력 사업은 0.18, 0.13마이크로미터(㎛) 공정 기반의 상보성금속산화반도체(CMOS) 이미지센서, PMIC 생산이다. 1700여건에 달하는 파운드리 사업 관련 특허도 있다.
최근 모바일 및 차량용 전력반도체에 최적화한 3세대 0.18㎛ BCD(바이폴라-CMOS-DMOS) 공정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지난해 9월 이태종 키파운드리 신임 대표가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면서, 회사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도 주목된다.
최근 회사는 공정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 교체도 일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사모펀드에 SK하이닉스가 참여했다는 점, 키파운드리 위치가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과 상당히 가까운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향후 SK하이닉스 파운드리 사업과 연계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SK하이닉스 측은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회에서 “회사가 간접 투자한 키파운드리 자산을 향후 고객 가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만 파운드리 산업은?...TSMC·UMC 등 산업 생태계 탄탄
파운드리 세계 1위 국가인 대만에는 12개 파운드리 업체가 있다. TSMC와 UMC가 대표적이다.
1987년 설립된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을 만큼 기술과 물량 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한다. 5나노부터 100나노 후반대 공정까지 파운드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공정을 서비스한다.
애플, AMD 등 세계적인 회사들이 TSMC 고객사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TSMC가 생산하는 모든 웨이퍼를 8인치 웨이퍼로 환산했을 때 연간 3000만장 웨이퍼를 생산한다. 국내 퓨어 파운드리 DB하이텍이 연간 156만장 생산능력을 지닌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12인치 파운드리 월 33만장, 8인치 파운드리 월 30만장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와도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최근 삼성전자와 기술 경쟁을 하면서 5나노 파운드리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올 1분기까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0만장(100K) 규모 5나노 파운드리를 꾸리는 것이 목표로 알려진다.
세계 3위 파운드리 UMC도 저력을 가진 회사다. 지난해 8인치 웨이퍼 기준 918만장을 출하한 이 회사 매출은 1768억대만달러(약 7조136억원)다. 14나노 대응이 가능하다.
이 외에 대만반도체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대만에는 10개의 크고 작은 지역 파운드리가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수십년간 형성된 탄탄한 파운드리 생태계다.
37개의 패키징·테스트 기업, 즉 후공정(OSAT) 업체가 파운드리를 든든하게 지원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ASE, SPIL, PTI 등 대만 업체들의 세계 후공정 시장점유율은 56.5%일 정도로 관련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다.
디자인 솔루션 업체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업체가 글로벌유니칩(GUC)이다. TSMC 파운드리 라인을 사용하고 싶은 고객사에 설계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주요 사업모델로 삼아 지난해 135억대만달러(약 5355억원) 매출을 올렸다.
이 외에 11개의 웨이퍼 회사, 3개의 마스크 제조업체, 미디어텍을 필두로 한 240여개 탄탄한 칩 설계 업체들은 대만의 독특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업계에서는 대만의 사례처럼 시스템 반도체 전반이 발전하려면 파운드리 외에도 탄탄한 후방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는 설계와 파운드리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면서 “후공정과 소재·부품·장비 생태계가 골고루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