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상반 특성의 과학기술과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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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로보캅부터 아이언맨까지 인간은 기술을 지속 발전시키고 기계와 융합해 편리를 추구하면서 이상형 미래를 현실화해 나간다. 불편한 생활 개선에서 질병을 고치거나 장애 환경 극복까지 기술 발전은 계속해서 인류 삶의 만족도를 높여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류 존속을 위한 영위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가 않아서 과학기술의 다른 측면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뛰어난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린 영화 속 주인공이 무적과 만능의 아이콘이 됐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상반된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과학·기술·의학의 발전이 과연 모두가 원하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것인가. 기술은 누구의 주도로, 누구를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개발하고 보급해야 하는 것일까.

기술로 인한 수혜는 편향될 수 있고, 어떤 이는 이를 당연하게 인식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은 아직까지 만인의 행복을 모두 아우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기술 발전 성과와 함께 늘 따라오는 숙제는 전쟁 무기가 사용하는 자 입장에서는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결코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처럼 전체를 고려하는 인류 상생 방안이다.

과학기술은 주어진 명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객관화한 시각을 공개한다. 100%라는 확률은 있지 않지만 최선의 확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나머지 변수를 포기하는 대신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발전의 이면을 무조건 위험시·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공개 토론과 비판을 통해 그것의 장단점과 위험성을 철저히 밝히고 대응책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류 전체에 혜택을 고루 배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고, 어느 한 방향만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단순히 과학기술 발전 속도와 방향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윤리 측면, 즉 후대를 비롯한 전 인류가 상생하는 길을 지금부터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올해 중점 추진 연구 테마로 '탄소 중립 연구'를 선정했다. 국민 삶의 질 제고와 인류 공존에 이바지할 키워드라는 판단에서다.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수소 및 이차전지 등 글로벌 친환경 산업의 급성장에 발맞춰 시장 선점을 위한 각종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도 결국 기술 발전의 한 방향만을 좇기보다 인류 발전과 상생 방안을 함께 마련하기 위한 일환이다.

과학기술의 궁극 목표와 방향은 당장의 혜택과 인류의 편리만을 취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발 물러나 미래를 위한 양보를 통해 인류의 영속된 길을 준비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인류가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바라는 이상형 미래는 이러한 체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구현될 수 있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초 과학의 세 가지 쓰임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첫째는 상품 총생산 증대 수단, 둘째는 파괴력이 더 강한 전쟁 도구, 셋째는 예술 및 보건 가치를 사소한 눈요기와 맞바꾸는 것 등이었다. 과학의 이면을 지적하는 그의 냉철한 비판 시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희망 찬 미래를 지향한 그의 비판은 21세기를 맞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과학기술의 미래 가치 실현은 휴머니즘과 다소 동떨어진 개념 같아 보여도 그 중심은 언제나 인간 존중의 사고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ljh1239@kim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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