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면 테크기업은 어김없이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주목한다. 'CES' 때문이다. CES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박람회로, 세상을 바꿀 첨단기술이 제일 먼저 데뷔전을 치른다. 혁신제품은 기본이고 한해를 관통하는 시장과 기술 흐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1967년 1회 전시회가 열렸으니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전자와 통신에서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자동차까지 산업별로 이름난 기업은 빠짐없이 명함을 내민다. 지난해에만 160여개 나라에서 4400개 업체가 참가했으며 관람객 수만 20여만명에 달했다.
올해 CES 2021은 유독 관심을 끌었다. 54년 역사상 첫 온라인 개막이었다. '올 디지털(All-Digital)'을 슬로건으로 가상공간에서 진행했다. 개막 전부터 비대면 전시회를 바라보는 기대감은 충만했다. 주최 측은 “CES 2021은 첫 디지털기술 이벤트로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신생기업에서 대기업까지 참여해 5세대 통신(5G), 차량기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주요 미디어와 조사기관은 전문가까지 동원해 기술과 시장 키워드를 짚어내기에 바빴다. 언론으로 보는 겉모습은 오프라인으로 열렸던 역대 CES의 판박이였다.
실상은 달랐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실망의 연속이었다. 전시회 위상은 참가 규모에 비례하는 법이다. 역대 CES에 비해 전시장이 반 토막 났다. 지난해 4400개에서 올해 1961개 기업으로 절반이상 쪼그라들었다. 세계 테크 시장을 이끄는 미국과 중국 업체가 대거 불참했다. 미국은 지난해 1930개에서 올해 567개, 중국은 1360개에서 199개로 각각 4분의 1, 6분의 1수준으로 축소됐다. 참가 규모가 줄 것으로 예상은 했어도 너무 빈약했다.
참가 업체와 관람객도 불만이 쏟아졌다. CES사이트에는 제품 카탈로그와 안내영상이 전부였다. 그나마 빅테크 기업 부스가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체면치레했다. 대부분은 기업 홈페이지에서 접하는 수준의 이미지와 카탈로그가 전부였다. 원하는 제품과 기업을 찾기도 첩첩산중이었다. '미로 찾기'가 따로 없었다. 콘퍼런스와 키노트, 토론세션 등 부대 프로그램을 위한 접근성도 크게 떨어졌다. '세계 처음이자 최대 규모의 디지털 전시회'라는 찬사는 허울뿐이었다.
최근 뜨는 가상과 현실을 융합한 '메타버스' 기술은 바라지도 않았다. 이미 시장에 안착한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서비스·콘텐츠도 딴 나라 이야기였다. 온라인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 아이디어나 편의성(UI·UX)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입장료 499달러는 'CES 이름값'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싼 참가비, 수월한 전시, 시간과 공간의 무제한 활용 등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면 이득일 수 있다. 이를 감안해도 6개월 전부터 준비했다는 국제 전시회치고는 초라함 자체였다.
그래도 기회는 확인했다. 변함없는 한국기업의 애정이다. 지난해 390개에서 올해도 345개로 크게 줄지 않았다. 130개 참가국 가운데 두 번째다. 전시회를 주최한 미국만이 앞자리에 있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무모함 아니면 어수룩함 탓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만큼 열정이 있고 도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세계무대에 기꺼이 내놓을 기술이 있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가상공간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미 단명한 비운의 음유가수 김광석을 환생시켰다. 걸그룹의 아바타가 거리낌 없이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걸그룹은 K-컬처 결정판이다. 첫 온라인 CES 2021이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