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K-디스커버리, 취지는 선하지만 결과는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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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디스커버리' 제도는 생소한 단어다. 이 제도는 어떤 기업에는 건강해지는 약이 되고 또 다른 기업에는 맹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 기업에서는 그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제도는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와 피의자 간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제도다. 특허권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권자가 침해가 의심되는 기업에 침해 증거 자료를 유리하게 수집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특허권자가 침해 의심자에게 침해 관련 자료의 목록을 작성해서 제출할 것을 요청할 수 있고, 이것이 부족할 경우 현장에서 직접 증거자료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정부는 특허권자의 현장 조사 요청 시 중립 위치에 있는 증거조사관을 지정해 조사하게 한다. 만약 현장 조사에서 침해 의심자가 자료를 누락하거나 삭제한 정황이 있으면 침해로 인정한다.

이 제도는 미국과 독일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그들 나라와 우리가 유사한 것은 글로벌 경쟁을 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원천특허 대부분을 그들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제도는 기술이 세계 최고인 국가에서 그들의 특허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제도를 특허법에 포함해서 시행하려고 한다. 취지에는 공감한다. 특허권자의 권리 보호가 공정 사회로 가는 가치인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타 기업의 기술을 탈취해서 기업 영리를 목적으로 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그것이 우리 업계 전체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우리 가운데 누군가에게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독이 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국내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은 우리 국내 기업에 소송을 남발할 공산이 크다. 법을 시행하는 쪽에서는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법 취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 법은 소송하라고 만든 법인데 소송이 없다면 법이 잘못된 것이거나 특허권자가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소송이 남발되면 특히 글로벌 기업에 비해 기술 열위에 있는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은 모두 폐업해야 할 것이다. 소송이 시작되면 연구개발(R&D)을 중단해야 하고, 제품을 구매하던 수요기업들은 납품을 중단해야 한다. 소송은 최소 6개월 지속될 공산이 크다. 매출도 없이 소송비용을 감당할 국내 소부장 기업은 몇 없을 것이다. 또 국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 대기업과 소송전을 하면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을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7월 1일 깜짝 놀랄 일을 겪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에 대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과의 소재·장비 기술 격차와 핵심 소재를 국내에서 조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이후 우리는 선발국과의 기술 차이를 인정하고 열심히 소부장 산업을 육성하자고 정치권과 행정부는 물론 전 산업계와 국민이 굳은 각오를 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해서 소부장 산업을 통째로 선발국 기업들에 재물로 주려 한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도는 시행되면 이전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또 후회한다 해도 이것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제도는 우리가 후배나 후손들에게 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 khahn@ks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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