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1>길거리 상점에서 찾은 우리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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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만큼 저울에 달아 가시고 돈은 소파 아래 놓고 가세요.” 운동을 마치고 포도를 사려고 간 길거리 가게에 아무도 없다. 그냥 나오기가 아쉬워서 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주인의 반응이 엉뚱하다. 너무 멀리 있어서 지금 당장은 올 수가 없으니 포도는 저울에 달아서 가져가고 돈은 소파 밑에 넣고 가란다. 반은 재미있고 반은 찡한 마음에 포도를 저울질해서 봉투에 담고, 돈도 충분히 소파 밑에 밀어 넣었다. 나를 믿었다는 생각과 우리 선배들이 살아 온 아름다운 우리를 새롭게 경험한 건 토트넘의 손흥민이 한 경기 4골을 터뜨린 것 이상의 기쁨이었다. 산업화와 정보화가 앗아간 보물을 되찾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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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정보화 시대에서 신뢰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자동화된 로봇은 스스로 보정하는 기능이 인간보다 훨씬 떨어지고, 그를 설계하고 구현한 사람의 생각대로 동작하기 때문이다. '로봇의 성악설'이 실제가 되거나 거짓 데이터로 학습된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다. 영화 '다이하드4'에서 해커들이 부리는 난동이 현실화하지 않으려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친 천재가 자율차를 해킹해서 사고를 유발하면 얼마나 많은 생명에 피해를 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불신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언론은 동일한 사건을 편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고위공무원과 젊은 병사는 설전을 멈추지 않는다. 해석이나 기억 문제가 아닌 양심과 상식 문제다. 폐쇄회로(CC)TV나 블랙박스 등 감시 장치를 곳곳에 설치하고 진위를 가리지만 술래잡기 놀이는 멈추지 않는다. 법원의 판단을 수용하지 않고, 학교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정권이 주인이 된 경제, 사회, 교육, 군사, 입법, 사법의 모순이 가져온 폐해다. 스스로가 혁신의 주체가 되어 혁신을 빌미로 한 정권의 압력을 단절하지 않는 한 풀리지 않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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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지 않는 정부는 겁박과 처벌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삼는다. 엄청난 오산이다. 처벌은 최소한의 질서 유지를 위한 방법일 뿐 미래의 신뢰 사회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의 틀을 새롭게 하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택하는 사람이 최후에 승리함을 보여야 한다. 학교의 교육이 지식만이 아닌 삶의 지혜와 미래를 만드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무의미한 법과 제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필요에 따라 처벌하는 어정쩡한 법은 제도의 권위를 상실케 하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에 법률이 그대로 존재하고 국민 대부분이 지키지 못하는 법이 국민을 잠재된 범죄자로 만들어도 국회는 법 만들기에 바쁘다. 실적이기 때문이다. 규제 혁신의 실마리로 법을 폐지하는 국회의원을 칭찬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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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와 공인의 투명함을 국민은 원한다. 제비뽑기로 통역병을 뽑고 연구 일상을 노트에 기록하는 유치함으로는 절대 투명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억지로 의심을 감추고 투명한 척 하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포도를 거래할 수 있던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 변모했는지 우울하다. 지도자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뻔뻔함과 돈과 권력이 삶의 가치인 양 변모했는지 자성하고, 편한 직장이 제일이라는 안이함과 목적보다 수단이 앞서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건강한 미래 사회 구축을 위한 기본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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