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거나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를 구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노예도 자유롭게 하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호러스 그릴리(Horace Greeley) 뉴욕 트리뷴 기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흑인 노예들은 가혹하게 다뤄졌다. 말이나 소 등 가축 길들이는 채찍이 흑인 등짝에 내려쳐졌다. 등이 갈라지고 피가 났지만 노예 소유주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매질이 무서워 달아나던 노예가 잡히면 발목이 잘렸다. 20대 초반의 링컨은 다짐했다. “내게 기회가 온다면 이 제도를 폐지할 것이다.” 워싱턴 D.C엔 파르테논 신전처럼 지어진 링컨 기념관이 있다. 관광객들이 링컨 동상 앞에 몰려든다. 세계사에 빛나는 인물과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서다.
링컨 집권 전부터 북부와 남부는 농공, 관세, 무역대립이 심했다.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된 곳이었다. 보호무역에, 관세가 높았다. 남부는 자유무역이 활발한 목화농업 중심지였다. 남부는 관세가 낮았다. 북부는 노예보다는 저임금 노동자가 많았다. 남부는 목화지대에서 일할 노예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북부는 노예제도를 윤리 문제로 돌렸고 남부는 높은 세금이 농민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남부 11개 주가 연방을 탈퇴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 선언했다.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이 터졌다. 남북전쟁 원인은 무역정책에 대한 남북 간 입장차였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군은 연이어 패했다. 평소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연방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예 이슈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던 링컨은 수세에 몰리자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문'을 발표했다. “현재 미합중국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주의 노예들은 1863년 1월 1일부터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링컨은 남부를 향해 노예문제는 인권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부 노예였던 흑인들은 대거 탈출해 북부군대에 지원했다. 무려 18만5000명이나 됐다. 북군 병력의 6%에 해당했다. 북부군 탈영자 수가 늘었다. “노예를 위해 싸울 수 없다!”
미국 메릴랜드 로욜라대 경제학 교수인 토머스 J. 디 로렌조는 링컨 신화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전쟁이 아니다. 미연방을 탈퇴하려는 남부를 무력으로 굴복시킨 사건이었다.” 링컨 박물관 링컨동상 뒤에 새겨진 문구는 이렇다. '이 성전에는, 그로부터 연방을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에서와 같이,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기억이 영원토록 고이 간직될 것이다' 노예해방에 대한 언급은 없다.
1862년 백악관 앞에 흑인 청중이 몰려들었다. 링컨 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링컨은 흑인들에게 외쳤다. “당신들의 인종을 위해서, 당신들은 현재 누리는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한다. 해방된 흑인들이 미국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당신들 고향과 비슷한 기후의 중앙아메리카가 이주해서 살기에 이상적일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풀어줄 테니, 딴 데 가서 살란 말 아닌가? 1862년 12월 1일 링컨이 의회에 보낸 메시지는 놀랍다. “나는 식민화를 강하게 찬성한다.”
“노예를 해방해 우리와 정치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만든다고요? 내 안의 감정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습니다.” 링컨이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스티븐과 토론에서 한 말이다. 존 F 케네디가 말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박선경 남서울대 겸임교수 ssonn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