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사' 자 직업의 무게

최근 사회적으로 동경 대상이 되는 직업에 대한 논란이 많이 빚어진다. 동경 대상이지만 존경 대상과는 다른 시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통상 우리 사회는 '~사' 자가 붙은 직업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며, 그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국가에서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 오로지 개인의 노력이 좌우하는 직업이어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의사, 약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글로는 같지만 한자로는 '~사(士, 師, 使, 事)'가 의미하는 뜻은 전부 다르다.

변호사·회계사·변리사 등에는 '선비 사(士)', 검사와 판사는 '일 사(事)'자를 쓴다. 의사·약사에는 '스승 사(師)'가 붙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공사 등에는 강한 권위를 의미하는 '부릴 사(使)'자를 쓰기도 한다.

선비 사(士)는 공인기관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춘 이에게만 부여하는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에게 쓰인다. 일 사(事)는 일정한 일을 맡은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보면 '사(士)'와 '사(師)'는 같지만 의미는 조금 다르다. 후자는 모두 몸으로 힘들이고 애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의사·약사·간호사·교사·사육사 등에 '~사(師)' 자가 붙는다.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은 모두 같지만 '~사(士)' 자가 붙은 변호사 등은 주로 문서 위주로 일을 하고, '~사(師)' 자가 붙은 이는 직접 몸수고를 해야 한다. 또 고단함에 대한 사회적 인정(認定)과 인정(人情)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사실 의사에 쓰이는 '스승 사(師)'는 서양의 영향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영어 'Doctor'는 가르치다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doceo'에 행위자를 나타내는 접미사 '-tor'가 결합한 형태다. '가르치는 사람,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원래 초기 기독교에서 '교리의 권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다 중세 유럽에서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 '의학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doctor medicinae)'으로 의미가 옮겨졌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고 근대 국가 체계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사람 가운데 의사 출신이 많았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의사를 근대 국가 건설에 공을 세운 국민의 스승,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스승 사(師)'를 붙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인식이 유입됐다.

여기에 한국적 사고가 더해져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동어 반복이지만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이기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이런 당연함에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구든, 어떤 직업이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다. 특히 의료정책이라는 중요한 이슈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아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주장에서 위급한 생명을 버려둘 만큼의 당위성이나 긴급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그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 더 그렇다.

'사' 자에는 '속일 사(詐)'도 있다. 말을 꾸미거나 교묘한 말이라는 뜻도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대한의사협회의 게시물을 보면 '사(師)'보다 '사(詐)' 자가 먼저 떠오른다.

모든 '사' 자 직업이 예외일 리 없다. 업(業)의 본질을 저버리면 그 업은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다. '의사'에 '선생님'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게 되기를, 사회적으로 동경과 존경이 아니라 질시 대상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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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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