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판 뉴딜 시작은 혁신 과정 이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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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코로나19로 말미암은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이후 사회경제 체제 변화에 능동 대응을 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을 투입, 새로운 일자리 190만개 창출을 목표로 세웠다. 정부가 내놓은 추진 계획에는 매우 다양한 사업이 담겨 있고, 한국판 뉴딜 성격과 추진 방향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필자는 이 계획의 핵심이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활용해 사회기반 시설과 공공 서비스, 산업과 기업의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라 본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이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혁신성장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이 혁신정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혁신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정책이 개발되고 추진돼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년에 걸쳐 역대 정부는 수차례나 신성장 산업 육성을 비롯한 다양한 혁신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혁신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려 없이 단순히 정부 재정 투입만으로 성과를 내려 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조지프 슘페터가 기업가에 의한 혁신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임을 설파한 이래 혁신 과정과 성공 요인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다양한 갈래로 이뤄져 왔다. 대표 사례로 1960년대 후반 영국 서식스대에서 진행된 신제품 성패 요인에 관한 연구, 198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가 진행한 13개의 혁신 프로젝트에 대한 종단형 추적조사 연구 등이 있다. 이들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은 기술 개발이나 신사업이 다양한 주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될 뿐 사전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자금과 인력 투입에 비례해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혁신 과정과 결과는 마치 태풍 진로와 같이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혁신 과정에 내재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혁신정책 설계와 집행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첫째 혁신 과정은 서로 다른 조직과 사람의 지식 및 자원을 새롭게 결합해 가는 과정이다. 쿠팡과 같은 하나의 유니콘 벤처가 탄생하기까지는 젊은 기업가에게 있는 아이디어와 비전이 훌륭한 엔지어니어 기술과 더불어 안목 있는 투자자의 자금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나 기술이 혁신성을 띨수록 시장을 통해 거래되거나 투자 받기 어려운 딜레마가 존재한다. 정부의 혁신정책은 대학, 연구소,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인재가 새로운 혁신 프로젝트로 유입돼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혁신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문제 해결 또는 학습 과정이다. 접착제 개발 실패로부터 얻은 3M의 포스트잇, 노래방 기기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디지털 셋톱박스 사업에서 성공하고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으로 다각화하고 있는 휴맥스의 성공이 전형 사례이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이 과정을 축적의 시간으로 표현했다. 정부는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이나 창업벤처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통해 혁신가와 기업가에게 시행착오 및 학습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해야 한다.

셋째 혁신 과정은 높은 불확실성과 위험에서 시작해 그것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다. 코로나19 백신과 같은 신약의 초기 탐색 과정은 기술 개발 실패 확률이 매우 높으며, 생활용품이나 패션 상품은 디자인과 제작 과정에서 실패 확률이 낮지만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혁신의 성공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어떻게 효과 높게 분산시키고 감소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동일한 혁신 프로젝트를 여러 팀이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 R&D 프로젝트도 일종의 중복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넷째 혁신 과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기술, 제품,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익에 대한 평가는 집단마다 다르다. 신기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이로부터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는 반면에 손해를 보는 집단도 있다.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차량공유 서비스나 원격의료 서비스와 같은 사례는 집단 간 이해관계 조정과 사회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도 집단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과제들로 구성돼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와 사용자,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혁신정책으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bhlee@kos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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