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수립한 자가통신설비(자가망) 운영 지침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간 자가망 활용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서울시와 부산시 등 다수 지자체가 자가망 인프라 활용 확대를 추진했지만, 통신서비스와 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제정된 전기통신사업법과 충돌했다.
과기정통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률에 근거한 자가망 사용 범위와 기준을 제시하고, 자가망 인프라 확대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함에 따라, 갈등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자체의 관심과 준수 노력이 필요하다.
◇자가망 가이드라인 배경은
자가망 구축은 1980년대까지 옛 체신부의 엄격한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지만 1994년 신고제로 전환된 이후에 철도·U-시티·스마트시티 등으로 활용 규제가 완화됐다.
규제 완화 배경에는 지자체 요구가 있었다. 서울시와 부산시 등 광역 지자체는 수천㎞에 이르는 자가망을 보유하고 행정업무와 폐쇄회로(CC)TV 등 시민 안전 시설에 활용했다. 사물인터넷(IoT)과 와이파이 등 무선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자체는 방대한 자가망 인프라를 내부업무 용도로만 활용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자가망을 일반 인터넷망에 연결하고 공공 와이파이와 IoT를 접목해 일반 시민에게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시민 통신 복지를 향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전기통신사업법과 충돌했고 통신사와도 마찰을 빚었다. 자가망은 자체 사용을 위해 구축한 '인트라넷' 개념이다. 통신망 유지·관리에 대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않은 법인이 무분별하게 자가망을 활용할 경우 통신서비스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정부가 통신사업 진입을 규제하는 건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민간 기업이 경제 가치와 국민편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자가망의 무분별한 활용은 통신 산업 근간을 흔들리게 한다.
이 같은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과기정통부는 타협을 모색했다. 지자체의 자가망 활용을 무조건 금지하긴 어려운 상황에서 법률 내에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다. 동시에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자가망 활용은 불법이라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안정적 자가망 활용 대안 제시
과기정통부 자가망 활용 가이드라인은 자가망 활용 주체를 '법인' 단위로 한정했다. 다른 법인 또는 개인에게 통신을 제공해선 안 된다는 '타인통신 매개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위반 시 법률에 근거해 과태료와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지자체가 통신사와 회선 계약을 체결, 통신사에 공공 와이파이 유지관리, 운영을 맡기며 서비스하는 유형을 합법이라고 봤다. 지자체가 통신사와 공동 펀드를 구축해 공동으로 서비스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자가망에 공공 와이파이 공유기(AP)를 연동해 활용하는 것은 명확한 불법이라고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은 이처럼 지자체 실무 담당자와 정책입안자가 제대로 자가망을 구축해 활용하도록 정확한 법률을 안내하는 게 1차 목적이다. 동시에 지자체가 자가망을 법률을 위반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용하도록 새로운 유권해석을 제시한 점도 특징이다.
'자가망 임대' 활용이 대표적이다. 지자체가 자가망을 통신사에 임대하고 통신사와 회선계약을 다시 체결하면 자가망을 활용해 일반 시민에게 공공 와이파이와 Io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통신망 운영주체가 지자체가 아닌 기간통신사가 되므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 아니다. 계약조건에 따라 지자체는 낮은 비용으로 자가망을 인터넷 회선에 연결할 수 있고 통신사는 지자체 자가망을 커버리지를 보완하는 데 활용 가능해 상호 '윈-윈'이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전기통신사업법상 자가망을 기간통신사업자에 제공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 자가망 활용 범위를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과제는
과기정통부는 자가망 활용을 확대하려는 지자체 의지를 인정했고 법률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안정적으로 활용하도록 대안을 고민했다.
전기통신사업법 내 이미 자가망 활용·금지에 대한 규정이 충분한 만큼 가이드라인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기 보다는 기존 법령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자체 실무자와 정책결정권자 혼선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과기정통부 차원에서 자가망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안내한 만큼 불법 활용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는 명분도 높아지게 된다.
다만 가이드라인으로 자가망을 둘러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렵다. 결국 지자체가 준수해야 가이드라인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자가망 활용 현실을 고려해 법률상 허용범위를 완화하되 기준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불법적인 활용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하도록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 인프라 일부인 지자체와 정부 자가망 전반을 관리할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제기된다.
통신 전문가는 “지자체가 자가망을 안정적으로 활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은 의미가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자가망 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