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무빙타깃' R&D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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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yhchung@keit.re.kr

'무빙 타깃'이라는 말이 있다. 이동하고 있는 차량, 선박, 항공기 등에 대한 사격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연습에 사용하는 이동식 표적을 뜻한다. 군대에서나 쓸 법한 용어가 몇 년 전부터 산업기술 연구개발(R&D) 분야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산업기술 분야에서 말하는 무빙 타깃은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 속도를 감안, 개발 목표를 변경하거나 탄력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민간기업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정부 R&D 과제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인식도 많다. 목표 변경을 위한 절차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R&D 과제는 세금이 사용된다는 특성상 신중한 처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정량 개발 목표가 설정된 상황에서 목표를 변경하고 이에 대한 적절성을 입증해야 하는 절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구 수행자와 과제 관리자 모두 입증 절차가 쉽지 않다고 느껴서 정부 R&D 과제 수행은 산업기술 트렌드에 맞는 유연한 추진보다 애초 설정한 목표 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시장 상황이 변한 탓에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종종 있다.

그러나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적용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 R&D 과제에도 무빙 타깃이 적극 활용돼야 한다.

실제로 관계자의 유연한 대처에 힘입어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지난 2010년부터 추진한 핵심 소재 개발 사업이 그 예다. 주요 사업 과제 가운데 하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투명 유리섬유 함침 필름' 개발이었다. 당시 섬유 분야에서 유명한 대기업이 이를 주관하며 안정감 있게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5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 트렌드가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OLED는 LCD보다 공정 온도가 높았고, 유리섬유 함침 필름은 내열성이 떨어져 상용화에 부적합했다. 이 때문에 내열성 강한 폴리이미드 개발로 목표를 변경해야 했다. 그러나 주관 기관이던 이 기업은 이 소재에 대한 경험과 연구 기반이 허약했다.

고심 끝에 목표를 폴리이미드 개발로 수정하고 주관 연구기관까지 폴리이미드 소재 개발에 적합한 기업으로 변경했다. 그 결과 R&D가 차질 없이 진행됐으며, 해당 기업은 지난해부터 불화폴리이미드를 양산하고 있다. 불화폴리이미드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이자 일본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다. 무빙 타깃을 통한 행정 지원과 결단력 덕분에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큰 성과를 이룬 셈이다.

행정 절차 때문에 무빙 타깃 설정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 급변하는 산업기술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환경 변화를 감안, 유연한 R&D를 추진해야 한다. 방향이 제대로 설정됐다면 세부 중간 목표는 상황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무빙 타깃에 대한 인식이 연구 수행자와 관리자 모두에게 더 널리 퍼지길 바란다. 트렌드에 맞는 목표 변경을 통해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당황하지 않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등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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