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부장 기업 한국행 러시
삼성·SK 수요와 ICT 인프라 매력
정부도 규제·인센티브 개선 속도
첨단산업 세계의 공장 위치 선점

Photo Image

# 대한민국이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글로벌밸류체인(GVC)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자 각국 소부장 업체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K-방역 체계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언택트(언택트) 서비스를 앞세워 GVC 주도권을 확보할 방침이다. 특히 소부장 분야에서는 적극적 외자 유치와 인수합병(M&A) 추진, 한국을 투명하고 안전한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으로 각인시키는 데 총력을 쏟을 계획이다.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 한국을 주목하다

반도체 업계는 대 한국 투자를 위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나서면서 세계 각국 소부장 협력사들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제한 등이 겹치면서 연구개발(R&D)센터, 생산거점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화학소재 기업 듀폰이 대표적이다. 듀폰은 내년까지 2800만달러(약 325억원)를 투자, 우리나라에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PR) 생산 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EUV용 PR는 일본수출규제 품목 3개 중 하나다. 듀폰 투자를 유치하면서 그동안 일본 의존도 높았던 EUV용 PR 공급선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는 작년 경기도 용인에 R&D 센터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초기 투자비용은 5000만달러(약 600억원) 규모다. 국내 반도체 업체와 지근거리에서 밀착 협력하며 각 공정에 최적화된 장비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독일 머크도 한국에 반도체 소재 R&D 거점을 만든다. 350억원 이상을 투자해 경기도 평택 송탄산업단지에 한국 첨단기술센터(K-ATeC)를 구축한다.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기 위한 CMP 슬러리 등에 관한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대만 글로벌웨이퍼스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투자기업 엠이엠씨는 지난해 11월 4억6000만달러를 투입, 충남천안에 제2공장을 준공했다. 일본에서 50%가량 수입 중인 실리콘 웨이퍼 부문에서 약 9%포인트(P) 수입 대체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계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도 한국행에 나서고 있다. 자국 정부의 까다로운 개별 수출 허가를 회피하는 것은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한층 굳건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영 전략이다.

도쿄일렉트론(TEL)은 올초 평택에 대규모 고객사 지원센터 '평택기술지원센터(PTSC)'를 열었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에서 불가 600m 떨어졌다. 차세대 반도체 장비를 선보이기 위한 R&D를 추진한다.

화학제품 전문 업체 아데카(ADEKA)는 현재 전북 전주 생산라인에서 전략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이바라기현 소재 가시마 공장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던 일부 반도체 재료를 전주에서 제조하기로 결정했다. 삼불화질소(NF3)를 한국 반도체 제조사에 공급하는 간토덴카공업도 충남 천안에 신공장을 세웠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소부장 기업, 한국으로 모십니다”

정부는 소부장 분야 글로벌 기업에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한편 선제적 투자 유치 제안과 협상으로 성공사례를 확산시키기 위한 정책을 지속 추진 중이다. 일본 수출규제가 촉발한 공급망 불안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GVC 재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그동안 해외투자자 투자 의향 신고에 따라 수동적 대응했던 방식을 공격적 발굴 형태로 전환하기로 했다. 수요기업, 유관기관, 산업 전문가 등 의견을 반영해 중점품목·기업을 집중 파악한 이후 투자 유치 제안서 선제시, 1대 1 심층협상 등으로 타겟기업을 확보한다. 일본 수출규제 관련 소부장 투자에 최대 40% 현금지원(기존 30%)이라는 '당근'도 제공한다. 향후 인센티브를 지속 확충해 해외 기업 투자 확대를 도모할 계획이다.

실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가진 미국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투자 유치 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존 켐프 듀폰 사장을 만나 EUV용 PR에 대한 한국 투자를 확정지었다.

정부는 국내 소부장 업계가 M&A를 추진할 수 있는 해외 업체 발굴에도 나선다. 해외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을 우리 기업에 전수해 시장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현재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 분야 핵심 소재와 부품 기술을 보유한 해외 주요기업 인수 및 합작법인 설립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부는 최근 '소부장 글로벌 M&A 활성화를 위한 전략기반 마련' 과제를 긴급 공고했다. 독일,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주요 국가별 M&A 후보 기업에 파악해 DB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M&A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각국 규제 대상 기술 현황과 규제 심사절차, 단계별 기준도 파악한다.

성윤모 장관은 최근 대한상의에서 개최된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 대화'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을 경험하면서 덜 효율적이지만 덜 위험한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면서 “GVC 재편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투명하고 안전한 첨단제품 생산기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