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실적보다 '창의성' 높이 평가
한국판 디지털 뉴딜 궤도 오르려면
혁신 아이디어에 꾸준한 투자 필요
페니실린과 나일론, 플라스틱, 전자레인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제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우연'과 '실수'다. 사소한 계기가 세상을 뒤흔드는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졌다.
페니실린은 무심코 뚜껑을 열어둔 배양접시에 날아와 붙은 곰팡이에서 비롯됐다. 가열된 폴리에스테르를 비우기 위해 장남 삼아 비이커를 휘저은 과학자는 강철보다 강한 실 '나일론'을 발견했다. 실수로 1000배나 많은 촉매를 쏟아 부은 유기고분자 합성 실험에서는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자석 옆 초코바가 녹아있는 것을 발견한 기술자는 전자레인지 원리를 찾아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추진하는 '알키미스트(연금술사)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순한 개발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연과 실수로 빚어진 발명품이 인류의 삶과 산업 구도를 송두리째 변화시킨 것처럼 아직 세상에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파생되기를 기대한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기존 연구개발(R&D) 과제의 틀을 완전히 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심으로 진행된 과거와 달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는 한편 연구 과정에 무한대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개발자 창의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과제 수행에서 벗어나 R&D를 수행하는 기술자들에게 혁신과 창의 DNA를 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올해 국가 R&D 예산은 24조2000억원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에 따라 최소 2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한국판 디지털 뉴딜 추진을 공식화한 데다 정보통신기술(ICT) 비중이 커지면서 R&D 예산이 크게 늘었다.
산업계는 정부 R&D 예산 중 일정 비율을 꾸준히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R&D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 사례로 산업부가 추진 중인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꼽았다.
코로나 이후 산업 재편을 대비하는 것은 물론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에 파괴적 혁신으로 글로벌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도전적 R&D에 안정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산업부가 추진 중인 도전적·혁신적 R&D의 정책 연속성 단절을 우려하고 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최근 추진된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과제들이 후속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해 중단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은 물론 향후 신규 과제 선정과 참여자 모집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등 도전적 R&D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예산 확보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