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20대 국회서 처리 의지
위반시 징벌적 과징금제 도입
"권한 없이 기술조치 강제 부당"
국내외 사업자 역차별 우려도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내놓고 국회가 20대 국회 내에 관련 법안 처리 의지를 보이면서 인터넷업계에서 논란이 확산됐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가 통신망 유통 정보를 확인할 권한이 없는데도 기술 조치를 의무화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지난 23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확정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관련 법안이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국회는 상임위와 본회의를 열고 법안을 처리한다.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의 경우 정부 제출안을 대안으로 백혜련·박광온·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묶어 통과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정부와 민주당은 23일 당정협의를 열고 20대 국회에서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 관심이 높은 데다 당정 의지가 강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짙다.
인터넷업계는 디지털 성범죄는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업자 책임 강화'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웹하드 사업자(40~50개)에서 모든 부가통신사업자(약 1만5000개)로 확대했다. 성 범죄물을 신고하거나 발견 시 삭제하던 수준에서 파일 업로드·전송 시점에서 걸러내고 삭제하는 '사전 대응'을 요구한 것이다. 위반 시 실제 손해액 몇 배에 이르는 '징벌성 과징금제'를 도입키로 했다.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오픈된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은 사업자 자체 정책에 따라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비공개 공간이나 메신저에서 오가는 정보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에 따라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터링 기술 적용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필터링 기술을 적용하면 시스템 부하가 커지고 서비스 다양성도 제한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포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등은 특정 목적 서비스인 웹하드와 달리 다양성과 확장성 있는 서비스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업계는 법안에 역외 규정을 두더라도 해외사업자 제재가 가능한지 실효성 여부도 따져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성 범죄물 상당수가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기 때문에 국내 사업자와의 역차별 이슈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국내 사업자는 충분히 협조적인 데도 결국은 또 국내에만 적용되는 법안을 내놓았다”면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 대책은 실효성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술 장치는 필요하지만 자칫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신고 시 성 착취물 차단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사업자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을 20대 국회에서 처리하려면 한 달 만에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법안이 처리되는 게 인터넷 업계의 가장 큰 우려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