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이트에 인력채용 알려
기존 물밑작전과 달리 노골화
침체된 시장 고용 불안감 노려
국가핵심기술로 대책마련 시급
'디스플레이 굴기'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이 우리나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문 인력을 빼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과거 영입 대상자와의 개별 접촉이 가능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물밑 작전을 펼친 중국 업체가 이제는 국내 채용사이트와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 노골적인 인력 빼내기에 나서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업계의 행보는 차세대 시장으로 꼽히는 OLED에서 후발 주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인재 사냥'이다. 우리 OLED 핵심 기술과 인력 유출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업계와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헤드헌팅 업체는 국내 채용사이트에 '대면적 OLED 관련 전문가' 채용 공고문을 게시했다.
해당 업체가 밝힌 채용 주체는 중국에 근무지를 둔 '해외 유명 디스플레이사'다. 채용 조건은 '65인치 이상 대형 OLED 패널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경력자'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 이외에 OLED 개발에 본격 뛰어든 국가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패널사의 인력 채용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분석했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최근 CSOT, BOE 등 중국 업체들이 대형 OLED 부문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라면서 “중국 업체가 한국에 경력 기술자 공개 채용 공고를 낸 것은 매우 이례”라고 말했다.
공고에 따르면 입사 후 맡을 직무는 회로·인쇄·소자 개발은 물론 패널 설계, 공장 수율 향상 등이다. OLED 패널 제조 공정의 큰 틀을 망라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며, 연봉은 1억원 이상에서 협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택 보조금 지원, 왕복항공권 등도 복리후생 조건으로 덧붙였다.
업계는 침체기에 빠진 한국 디스플레이 시장의 틈새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패널 제조사는 경영난 타개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사업 구조 개편과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고용 불안감이 높아진 개발 인력을 중국 업체가 빼가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대형 OLED 시장을 이끌고 있는 LG디스플레이 개발진을 겨냥한 채용 제안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동안 국내 기술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된다는 정황은 여러 차례 포착됐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항공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많은 연봉과 좋은 처우를 미끼로 한국인 기술자가 보유한 기술 및 제조 노하우를 확보하는 형태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이 핵심 기술 탈취 후 우리 기술자들을 '토사구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 대부분이 한국 경력자에게 기술 이전을 취업 조건으로 요구한다”면서 “3년 이상 근무 계약을 맺고도 6개월 만에 내쳐진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OLED가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점이다. 해외에 관련 기술을 유출하면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따라 3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업계는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더해 기술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추가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업 목적이 다른 별도의 유령 업체를 만들어 취업시키거나 현지 대학에 이름을 올려 입국 목적을 속이는 업체도 있기 때문에 인력 유출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국가핵심기술 분야에서 핵심 인력 풀을 꾸리는 등 업계와 정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