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둘러싼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2년여 논란 끝에 국회에서 의결됐다.
시장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린다. 암호화폐 관련 산업을 제도화하는 첫걸음이자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규제라는 긍정 기대론이 있다. 반면에 블록체인 산업의 특수성과 혁신 장려를 무시한 규제 편의주의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엄격한 고비용의 신고 요건으로 대규모 사업자만 살아남고 중소 사업자는 폐업 또는 탈법의 덫으로 내몰린다는 비판론도 팽팽하게 맞선다.
이 개정안의 제안 이유는 익명성 짙은 가상자산 거래에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의 위험성을 예방할 법·제도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회원국들에 자금세탁방지 기준 제정과 이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FATF가 오는 6월 각 회원국의 이행 정도를 점검해서 이를 다섯 등급으로 매길 계획이다. 금융 당국이 낮은 평가를 받아 금융거래 제재를 받을 것을 가장 우려한 점이 이 법안 발의와 국회 통과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처럼 이번 개정은 자금세탁방지 목적에 국한될 뿐 가상자산 산업 육성이나 혁신 장려와는 무관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이 제도권으로 편입돼 성장하려면 가상자산의 민사 정의와 보호 체계, 자본시장법상 금융상품성, 공모 규제 등이 정립될 필요가 있음에도 특금법은 그에 대한 의문을 전혀 해소해 주지 못한다.
2017년 9월 27일 금융위원회는 “명칭이나 기술과 관계없이 모든 암호화폐공개(ICO)는 금지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행정 법규도 아닌 그 발표가 모든 ICO를 금지하는 유일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개정법률에 따라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 사업자의 ICO, 특히 증권형이 아닌 코인형의 ICO 적법화와 증권형 토큰의 공모 허용 여부도 해결되지는 않는다.
개정법률에 대해 산업과 기업은 몇 가지 의문을 느끼게 된다. 업종, 규모, 서비스 모델과 관계 없이 모든 가상자산 사업자를 수범자로 규정한 결과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모든 사업자가 금융 당국의 허용 지침 없이는 미적지근한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계좌를 개설받기가 거의 어렵다는 점이 큰 걱정이다.
많은 스타트업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에 드는 엄청난 비용·시간 부담만으로도 회사 존립을 걱정하는 상황에 처했다. 암호화폐 전송 서비스 회사들은 1000달러 이상 전송에 송금인과 수취인 관련 정보를 수집·보관·이전해야 하는 여행규칙을 완벽히 준수하기 위한 기술상의 어려움과 개인정보보호법상 의무와 충돌을 걱정한다.
다행히 대통령령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관련 규정이 어떻게 제정되는지에 따라 산업에 숨통이 트여질 여지는 있어 보인다. 은행이 실명확인계좌를 개시하는 기준과 조건에 대한 대통령령을 정할 때 일정 요건을 갖추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이 개설해야 하고, 은행의 판단에 대해 간접 불이익을 없애야 한다. FIU 원장은 가상자산 거래의 세부 내용에 따라 실명확인계좌개설 요건을 면제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혁신과 자금세탁방지의 필요성을 균형 있게 고려하기 바란다.
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실명확인계좌를 개설 받지 못한 사업자의 신고는 FIU 원장이 대통령령의 내용에 따라 수리 여부 기준을 정할 수 있다. 기준 제정 시에 정부는 무엇보다 가상자산업이 가져올 혁신과 그로 인한 성장 가능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제도의 초기 정착으로 국내외 투명성과 신뢰를 우선 확보하면서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을 위한 광범위한 제도 개선, 법령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 기술·법조·학계·금융·정책·비즈니스 등 전문가들이 융합·논의해서 그 결과물을 정책에 반영하는 국가 분위기를 조성하고, 더 나아가 각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초국가 정책 및 제도 논의 네트워크에도 적극 참여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 탈중앙화는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이지만 법·제도를 정립하는 방법론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jb.park@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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