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디지털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는 '지켜보자'며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도 기업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향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논의에 의견을 적극 개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 대응에도 불구, 국내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구글 등 글로벌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국내에 세금을 낼 가능성이 커진 점은 다행스럽다.
2일 기획재정부 디지털세 장기대책 국제 논의 최근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소비자대상 글로벌 제조업을 영위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디지털세 영향권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한 다국적기업 조세회피 방지대책(BEPS) IF총회에서 소비자대상 제조업에도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디지털세 초안에 합의했다. 글로벌 총매출액, 대상사업 총매출액, 이익률, 배분대상 초과이익 합계액 일정규모 이상 등 4대 기준을 충족하는 소비자대상 제조업에도 디지털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기준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매출 규모가 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국내 기업이 디지털세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이중과세 방지 원칙을 적극 활용, 기업 법인세 부담이 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TV, 냉장고, 세탁기, 스마트폰 등이 포함되며 중간재인 반도체는 디지털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세 논의가 진행 중이고 공식 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불확실성이 큰 만큼 OECD 논의를 지켜본 뒤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매출 비중이 큰 삼성전자 등이 디지털세 대상에 포함되면 국내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삼성전자 해외매출 비중은 86%에 달했다. 2018년 이 비중은 90.1%였다. 삼성전자는 2018년 납부한 총 조세공과금 17조8000억원 가운데 86%를 한국에서 냈다. 다만 지금까지 세금을 안 내거나 적게 냈던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세금을 낼 수도 있어 세수유출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OECD는 7월 IF총회를 한 번 더 열어 핵심 정책사항을 합의하고 연내 최종안을 확정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중과세 조정방안 등 정밀한 제도 설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와 연대해 최대한 국익을 확보하겠다”면서 “기업이 국가별로 세금을 내야 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모회사 소재지국 정부가 세금을 걷어 각국에 분배하는 등의 납세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를 뜨겁게 달궜던 글로벌 인터넷 플랫폼 기업 세금회피 문제를 개선할 계기가 마련됐다. 이들 기업은 국내에 물리적 고정사업장이 없어 매출 파악조차 어려웠다.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구글 등은 OECD가 정한 기준에 따라 초과이익에 대해 국가별로 세금을 내야 한다. 세율이 낮은 나라에 본사를 두고 소득을 이전하더라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고정사업장 없는 글로벌 인터넷 플랫폼 기업과 싸워야 하는 국내 인터넷 기업 역차별 해소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