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기업이 개인 고객 대상 자산·신용 관리 서비스를 대거 선보이면서 카드사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데이터 스크래핑을 통한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정보를 긁어 오는 파이프라인이 되는 '카드사 홈페이지'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카드업계와 핀테크업계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스크래핑을 API 방식으로 전환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일부 카드사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비바리퍼블리카, 뱅크샐러드, 핀크, 카카오페이 등 고객을 수백만명 보유한 대형 핀테크 기업이 모바일 가계부 서비스 등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카드사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등 '스크래핑 과부하'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데이터 스크래핑은 고객이 자신의 인증 정보를 한 번만 제공하면 컴퓨터가 고객이 이용하는 금융사에 접속해서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제공하거나 가공하는 기술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가상의 로봇이 한데 모아 관리하거나 서비스해 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핀테크기업이 최근 모바일 가계부 등 신용이나 자산을 관리하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이를 이용하는 고객이 급증하자 스크래핑 접속도 덩달아 늘었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마비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대형 카드사 두곳의 홈페이지가 일시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핀테크사의 가계부 서비스 등으로 카드사 홈페이지 트래픽이 100배 이상 늘어난 곳도 있다”면서 “동시에 수백만명의 정보를 스크래핑하는 트래픽 폭주가 최근 빈번하게 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크래핑 사례가 급증하면서 공인 인증 기반 인증비용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이 또한 카드사가 비용을 내고 있다.
가계부 서비스 등은 고객이 이용하고 있지 않아도 내부 콘텐츠를 실시간 업데이트해야 하기 때문에 스크래핑이 실시간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객의 이용 유무와 상관없이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지속해서 정보를 긁어 오는 형태다. 이용자가 늘수록 트래픽은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카드업계는 스크래핑이 급증해도 현재 법적으로 핀테크 기업이 정보를 긁어 가는 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카드사는 홈페이지에 스크래핑 정보를 긁어 갈 때 정량 정보를 100% 가져가지 못하도록 일종의 방해 소프트웨어(SW)를 설치했다. 또 다른 카드사는 아예 내부 프라이빗 클라우드 시스템을 도입, 트래픽 과부하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형 핀테크사와 카드업계는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긁어 오는 스크래핑 방식을 API로 전면 전환해서 트래픽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한 대형 핀테크 기업 대표는 “법적으로 스크래핑이 현재까지 문제 소지는 없지만 금융사와 협력 사업을 하는 상황에서 과부하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최근 대형 카드사와 스크래핑 방식을 API로 전면 전환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업계 카드사 관계자도 “대형 핀테크사와 오픈API를 통해 정보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