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에 의해 제시된 '와해성 혁신이론'은 1990년대 경영학계에서 주목받은 이론이다. 기존 절대강자 업체들이 새로운 고객 수요를 발견하는데 실패하면서 혁신에 뒤처지는 것을 설명한다. 정보기술(IT)업계 강자이던 IBM이 새로운 IT 시장에서 소외되고,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혁신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제록스가 개인용 레이저 프린터 시장의 장악에 실패한 사례 등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즉 기존 시장의 강자들이라 해서 시장에서 진행되는 혁신을 주도하거나 방어하는데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반대로 기존 체제가 혁신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론이다.
최근 미래 자동차에 대한 혁신 경쟁이 치열하다. 이 변혁이 기존 자동차 산업에 의해 주도될 것인지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와해성 혁신을 주도할 것인지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테슬라, 리비안자동차 등 전기자동차 회사들의 무서운 성장세를 보면 자동차 산업에서 와해성 혁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자 가운데 최근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회사가 리샹(理想)자동차다. 처허자(CHJ)자동차에서 최근 개명했다. 올해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해 기업 가치를 3조원 넘게 인정받고 있다.
리샹자동차는 최근 5억3000만달러의 대규모 시리즈 C 투자를 중국의 공동구매 사이트로 성공한 메이퇀 뎬핑의 창업자 왕싱이 주도했다. 이미 소개한 바이트댄스 또한 투자에 참여하면서 중국의 벤처캐피털과 성공한 창업가들이 결합한, 중국의 강력한 창업자금 시장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투자 유치 성공 배경에는 리샹자동차의 'LI1'(리딩 아이디얼 원)'이라고 불리는 고급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있다. 전기차의 최대 약점은 주행거리이다. LI1 모델은 이른바 '주행거리 연장' 수단을 갖추고 있는 주행거리연장전기차(EREV) SUV이다. 이 차량은 700~1000㎞ 주행이 가능하다. 기존 전기차 주행거리의 한계에 따른 소비자 불안과 회피를 제거했다.
EREV는 전기차에 다른 발전 장치를 함께 장착하는 방법이다. 전기 배터리의 전기를 공급받아 전동모터가 동력을 생산하는 것이 순수 전기차라면 여기에 가솔린 엔진 또는 연료전지 등을 통해 전기를 추가 생산, 배터리의 부족한 전기를 공급하게 한다.
주 에너지는 배터리를 사용하고 꼭 필요한 시점에 가솔린 엔진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거리를 늘리고 환경에 좋은 방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 충전소가 없는 경우에도 배터리를 자체 충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LI1은 배터리를 30분 만에 80% 충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자동차 기술과 오캠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스라엘 모빌아이의 충돌방지 인공지능(AI) 기술이 장착됐다. 6인승에 4대의 대형 스크린이 장착된 LI1은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으로 32만8000위안(약 5000만원)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창업가 리샹(李想)은 이미 중국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운다. 자동차 온라인 판매 플랫폼 '오토홈'을 2005년에 창업하고 2013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바 있는 성공한 창업가이다. 리샹은 중국에서 테슬라의 플러그인 고속 충전 기술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점에 창안, 차량 내부에서 충전이 가능한 쪽으로 개발했다. 테슬라가 대부분 판매된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기후와 달리 날씨가 나쁜 나라에서 외부 충전 또한 운전자에게 매우 불편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일본·한국·중국처럼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 충전소의 대량 설치도 쉽지 않다는 점도 테슬라 모델이 글로벌 추세가 될 수 없다고 본 이유다. 중국에 많은 충전소를 세우고 투자했지만 테슬라는 2018년 중국에서 1만8000대의 실적에 불과하고, 운전자들은 충전소 앞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창업가 리샹은 2020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 팔겠다는 목표가 있고,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을 위한 자동차 개발에도 협조하고 있다.
리샹자동차의 사례는 중국의 자동차 굴기 의지와 성공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는 성공창업가들이 벤처캐피털과 새로운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중국 벤처 투자 생태계의 진화, 연속 창업의 성공 신화를 써 가고 있는 중국의 새로운 창업가 세대 모습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디디추싱과 같은 공유 경제를 일찍 수용한 것이 새로운 자동차 산업 발전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의 규제와 더불어 대비되는 모습이다. 조만간 우리 자동차 산업도 중국에 의해 크게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게 하는 리샹자동차이다.
이병태 KAIST 교수 bt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