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한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부문 대표가 올해 안정적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입지에 놓였다. HDC신라면세점 대표 재직 당시 밀수 혐의에 연루돼 검찰에 송치됐기 때문이다. 정기 임원인사를 앞둔 신세계는 이 대표의 거취를 놓고 고심하는 눈치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은 오는 29일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저조한 실적으로 인사를 앞당겨 실시한 이마트부문과 달리 호실적을 거둔 백화점부문은 성과주의에 입각한 승진 인사가 예고된다.
그룹 측은 이번 인사에도 성과주의·능력주의 원칙을 중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부문을 이끌고 있는 이길한 부사장 연임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 대표는 HDC신라면세점 대표로 재임할 당시 2016년 4월부터 중국인 브로커와 직원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명품시계를 국내로 밀반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9월 이 대표를 관세법 위반 혐의에 따른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회사 측은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거취를 논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직 대표가 밀수에 가담했다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 부담이 크다.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인 지난 2017년 12월 이 대표를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으로 영입한 신세계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자칫 경영진 리스크가 기업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신세계는 이 대표의 연임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대표가 올해 탁월한 경영 성과를 내며 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초 차정호·이길한 각자 대표체제로 변경하면서 차 대표에게 패션·라이프스타일을, 이 대표에게 화장품을 맡겼다.
이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화장품부문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대비 74.5% 급증한 54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패션·라이프스타일 영업이익이 79억원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대비되는 성과다.
비디비치를 중심으로 백화점뿐 아니라 중국 티몰 글로벌, 해외면세점 등으로 판로를 확장한 덕이다. 전사 수익의 87.3%를 책임지며 실적 성장을 견인한 만큼, 성과주의 원칙을 중용하면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업계 관계자는 “이길한 대표는 면세 유통업과 글로벌 비즈니스에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으로, 이미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면서 “다만 재임 중에 밀수혐의가 확정돼 리스크에 휘말릴 경우 회사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