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 소재·부품 분야 국산화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유일 기초과학 연구개발(R&D) 기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기술 산업화와 다소 동떨어진 연구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IBS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실제 산업 분야 난제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다. 소재·부품 산업을 혁신하는 IBS 연구 성공 사례를 2회에 걸쳐 그려본다.
지난 2012년 개원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온 IBS가 최근 중요성이 커진 소재·부품 분야에서 혁신 성과를 내놓고 있다. 대표 사례가 지난 8월 산하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의 '핫전자' 활용 연구다. 연구단은 기초과학기술 영역에 있는 핫전자를 활용, 효율을 높인 태양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핫전자는 빛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 금속 표면에 생성되는 고에너지 전자다. 에너지 준위가 높아 활성도가 높다. 그동안은 실제 활용보다는 차세대 기술로 여겨지던 분야다. 포집해 활용하기가 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핫전자는 수 피코초(1조분의 1초)만에 사라져 버리고 확산거리도 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연구단은 핫전자 수명과 확산거리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찾아내 실제 태양전지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빛을 잘 흡수하는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를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에 나선 결과다.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를 접목했을 때 핫전자 수명이 기존보다 22배 오래 유지됐다.
이 결과로 빛이 전력화 되는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기존 한계를 뛰어넘어 태양전지 효율을 66%까지 끌어올리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핫전자 연구는 촉매 활성을 극대화하는 것에도 활용가능하다. 연구단은 촉매와 핫전자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촉매전자화학'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주창하고, 관련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박정영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은 “시작은 기초연구였지만, 실제 산업에 도움이 될 기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핫전자에 대한 이해가 태양전지와 촉매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BS가 소재·화학·물리학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 성과를 내놓은 결과였다. IBS는 2012년 이후 과학자용 연구정보 데이터베이스(DB) '웹 오브 사이언스(WoS)' 기준 소재·화학·물리학 분야 논문 3990개를 내놓았다. '피인용 상위 1% 논문(HCP)'은 112개로 비중은 2.81%다. 같은 시기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8717개로 두 배 많은 논문 성과를 냈지만, HCP 수는 158개, 비중은 1.81%에 불과하다. 양에서는 RIKEN이 우세지만 논문 질은 IBS가 더 높은 셈이다. IBS 논문 인용수를 정규화한 'CNCI'는 1.77로 세계 평균 1은 물론이고 RIKEN 수치인 1.5보다도 높다.
심시보 IBS 정책기획본부장은 “지금까지는 해외 선진국을 모방했었지만 최근엔 기초과학 투자로 선도형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데는 기초과학이 필요하고, 최근 부각된 소재·부품 분야도 기초과학을 토대로 튼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표> IBS·RIKEN의 'WoS' 기준 2012~2019년 소재 및 물리·화학 분야 논문 성과 비교 (IBS 제공)
<표> IBS·RIKEN 기관 비교 (IBS 제공)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