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에 경제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출범 첫 해인 2017년에는 '3년 만의 3%대 성장률 회복'을 기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성장률은 작년 2.7%로 떨어진 후 올해는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저성장·저물가가 이어지는 현 상황을 반전시키는 게 남은 임기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실탄인 재정 지출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과도한 지출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통화 정책과 함께 과감한 규제완화 등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0년 만에 '2% 미만 성장률' 위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도 경제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2015년 2.8%, 2016년 2.9% 성장률을 기록해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컸다. 그러나 2017년 성장률은 3%대를 깜짝 회복(3.2%)하면서 기대가 큰 상황에서 집권 2년차를 맞았다.
기쁨의 순간은 짧았다. 2018년 들어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시작된 미중 무역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을 키웠고, 주요 경제지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18년 2.9%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수출액(통관기준)은 6054억7000만달러로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수입도 5349억9000만달러를 기록하며 무역액은 역대 최대인 1조1405억달러로 집계됐다.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이 작년 말부터 무너지면서 올해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계속됐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업황 부진 등으로 수출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1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10월 수출액은 467억8000만달러에 머물러 전년 대비 14.7% 감소, 올해 들어 최대 감소폭으로 기록됐다.
정부는 당초 올해 성장률을 2.6~2.7%로 전망했지만 2.4~2.5%로 하향조정했고, 최근에는 이마저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2%대 초반은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1%대를 점치는 곳이 많다. 올해 1%대를 기록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0.8%)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2%를 밑돈다.
최근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0.8%를 기록한 후 계속 0%대를 이어오다가 8월 -0.038%를 기록해 사실상 하락세로 돌아섰다. 9월에는 0.4% 하락하며 196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처음 공식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다. 10월 상승률이 0.0%로 전환했지만 디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소득주도성장'도 성적표는 우울하다. 올해 2분기 가구원 2인 이상 일반 가구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0배로 전년 2분기(5.23배)보다 악화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의미로, 2분기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한계 직면한 '돈 풀기'…전문가들 “경제 체질 개선해야”
정부는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9.3% 많은 513조5000억원 규모다. 사상 처음 500조원을 돌파한 '초슈퍼예산'으로 불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금 재정 지출 확대는 미래 더 큰 비용을 막는 적극적 투자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출을 크게 늘리는 것이어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된다. 기재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세수입은 올해 294조8000억원에서 내년 292조원으로 감소한다. 2021년 304조9000억원, 2023년 336조5000억원 등 연평균 3.4%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올해 734조8000억원에서 2028년 1490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8.0%에서 56.7%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예상한 국가채무 증가 속도보다 빠른 수준이다.
재정지출 확대가 성장률 제고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매년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리고 추가경정예산까지 투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경기가 살아나고, 이는 다시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선순환 체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지출 확대 뿐 아니라 과감한 규제개선, 부실기업 정리 등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에 대응해 제때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문 대통령이 '공정'을 강조한 만큼 공정경제 정책을 가속화 해 중소기업·자영업자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갑의 횡포'가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공정경제를 이유로 대기업 규제를 강화해 경영환경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5일 '중견기업 CEO 조찬 강연회'에서 “경험상 지금처럼 경제 여건이 어려울 때 기업이 수익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반칙 행위가 더 많이 발생했다”면서 “중견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한 계열사 간 내부 지원,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내부 거래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