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방해에 해당하는 담합은 입찰제도는 물론 공정경쟁 근간을 뒤흔든다. 경쟁제한을 통해 국가 예산 지출을 늘리고 민간기업은 사익을 취하기 때문에 뇌물이나 향응 제공보다 악질적 행위로 분류된다.
그러나 담합에 따른 제재가 느슨하고 허술한 탓에 담함은 끊이지 않고 자행되고 있다. 차제에 불법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강력한 법 집행과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6개월 징계, 적절한가
조달청의 통신사 담합 부정당제재 처분은 입찰 참여 제한 기간과 형평성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통신사 공공기관 전용회선 입찰 담합은 2015년 4월부터 2017년 6월까지 12개 입찰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 입찰 수주액은 총 1613억9400만원(부가세 제외)에 이른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시행령 별표2 '부정당업자의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시행규칙)'에 따르면 담합을 통해 낙찰을 받은 자는 2년간 공공 입찰 참가를 제한받는 부정당제재를 받도록 돼 있다. 12건 입찰에서 총 14건 낙찰(KT 9건, LG유플러스 4건, SK브로드밴드 1건)이 이뤄진 만큼 최대 2년의 부정당제재가 예상됐다.
그러나, 조달청이 3사에 내린 부정당제재 처분은 '6개월'에 불과하다. 물론 부정당제제 기간과 낙찰 금액, 낙찰 횟수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서울시 도로교통관리시스템 입찰(약 250억원 규모) 담합 당시, 서울시가 수행사에 최초 2년(24개월) 부정당제재 처분을 결정했던 사례와 비교하면 조달청 처분 수위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담합 행위에서 사업자별 가담 정도와 취한 이익이 다른데도 모두 똑같은 처분이 내려진 것도 납득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달청은 불법을 저지른 것은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징계에서도 차등을 둘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4월 공정위는 KT에 과징금 57억4300만원, LG유플러스에 38억9500만원, SK브로드밴드에 32억7200만원, 세종텔레콤에 4억1700만원의 과징금을 처분하고 KT를 검찰에 고발했다.
KT가 가장 많은 9건을 낙찰 받은 반면에 세종텔레콤은 들러리로 참여 정도가 미미했기 때문에 처분에 차등을 둔 것이다. 조달청이 KT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같은 제재 처분을 내린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리니언시가 영향 미친 듯
'부정당업자의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에 따르면 각 중앙관서 장은 부정당업자의 자격제한 기간을 그 위반행위의 동기, 내용 및 횟수 등을 고려해 제2호에서 정한 기간(담합의 경우 참여도와 낙찰 여부에 따라 6개월, 1년, 2년)의 2분의 1범위에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회선 통신사 입찰 담합은 위반행위 동기나 내용, 횟수 등 모든 측면에서 제재 기간을 줄일 만한 사안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조직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개 통신사가 공정위 조사 당시 리니언시(자진신고 시 처벌 경감 제도)를 통해 자백을 한 점이 제재 기간 경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리니언시를 한 사업자에 대해 시정조치를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리니언시를 하지 않은 한 통신사도 공정위 조사 후반에 조사에 협조를 함으로써 제재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통신 3사가 동시에 1년 이상 부정당제재를 받으면 국내 공공기관 통신망 사업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공분야에서는 국가정보통신서비스 4.0(GNS 4.0)을 비롯한 철도통합망(LTE-R), 경찰청 통합망 등 굵직한 통신망 사업이 예정돼 있다. 조달청이 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통신사가 '어차피 강한 제재를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악용, 담합을 자행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는 “조달청과 계약심의위원회에서 여러 가지를 감안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통신사가 행한 불법에 비하면 처분은 솜방망이에 가까워서 제재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당제재, 효과 발휘하려면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에서 명시한 부정당제재는 공공분야 입찰(사업) 공정성 확보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건설,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프트웨어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담합과 계약 불이행, 조건변경 등 불공정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발주처에는 부정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이은 담합 등 끊이지 않는 불공정 행위는 부정당제재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최장 2년 입찰 제한을 명시했지만 기관장 재량에 따라 2분의 1 범위에서 줄일 수 있도록 한 조항부터 문제다. 동기나 내용, 횟수 등을 고려해 감경할 수 있다고 했지만 동기나 내용 등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간 감경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사유를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3개월이나 6개월 부정당제재가 제재로서 효과가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정당제재를 받은 시기에 중요한 입찰이나 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가처분소송을 통해 제재 집행 시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제재 기간이 1년 이상이라면 그 이후 공공사업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사업자도 쉽게 제재 집행 시작 시기를 조절하려고 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6개월은 가처분소송 등을 통해 중요 사업 입찰 이후로 부정당제재 시작 시점을 조절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방지책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