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별인터뷰Ⅲ] 김무환 포스텍 총장 '개방형 혁신으로 창의인재 양성'

“전화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과거 집에서 쓰던 유선전화기는 그저 통화만 잘 되면 됐지만 스마트폰을 다릅니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폴리머, 외장 소재까지 모든 기술이 집약된 기기죠, 당연히 핵심기술 폭도 그만큼 넓어져야 합니다.”

지난 3일 포스텍 제8대 총장에 취임한 김무환 총장은 “활황산업에 집중 투자하던 방식이 과거에는 주효했지만 제품 하나에 많은 핵심기술이 들어가는 지금은 우수하고 다양한 기술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이를 발굴해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바로 기술독립”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취임식에서 “다가올 위기를 읽어내며 조직이 스퍼트를 내야할때 방향을 잡는 조정경기의 타수와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에게 최근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떠오른 기술독립을 이뤄내기 위한 대학과 기업의 역할, 창의적 인재양성 해법, 그리고 글로벌 대학으로써 포스텍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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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포스텍 총장

-포스텍 발전과 우수인재양성을 위해 비전이 있다면?

▲포스텍 건학이념은 '교육과 연구로 국가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포스텍 비전이자 목표다. 이를 위한 총장의 역할은 '타수(舵手)' 리더십이다. 조정경기의 타수는 앞에 나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독려하고 풍파를 읽어내며 스퍼트를 낼 때 방향을 잡는다. 모든 구성원과 단위조직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다가올 위기를 미리 읽어내 대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겠다.

-일본수출규제로 기술독립이 과제로 떠올랐다. 교육계가 바라본 기술독립의 중요성과 의미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빠른 성장을 위해 효율적인 R&D 투자를 중시해 왔다.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했다. 일본수출규제는 이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 계기가 됐다.

학술정보 분석기관인 '클래리베이트'가 최근 소재 관련 기업 연구를 놓고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일본 등 4개국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특허와 산업 기여도 상관관계를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기업은 소재 분야에서 미국보다 발명 규모가 더 커 양적으로 더 많은 신기술을 내놓는다. 하지만 인용 면에서 보면 차이가 크다. 상위 1% 특허만 보면 한국은 미국, 중국과 비교해 상당히 떨어진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발명 규모는 1.7배 정도지만, 영향력 높은 발명 수는 6배가 넘는다. 일본은 발명 규모나 영향력 높은 발명 수에서 한국, 중국, 미국을 압도한다. 우리가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원천기술과 영향력 높은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다. 많은 연구들이 기업의 새로운 시장 개척이나 기술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좋은 기술 한두개만으로 충분히 좋은 제품을 만들던 과거와는 다르다. 스마트폰에 수많은 핵심기술이 들어가있는 것처럼 다양한 기술확보를 통해 기술독립을 해야한다.

이런 연구가 단기간에 이뤄지진 않는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하기도 어렵다. 대학과 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이유다. 장기적 안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와 지금의 기술을 혁신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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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전경

-기술독립을 위해 중요한 것이 인재양성이다. 이를 위해 교육계가 개선해야할 점이 있다면?

▲한마디로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투자비용과 고등교육 등록률은 OECD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고등교육 등록률이 무려 세계2위(2017년기준)이다. 하지만 교육시스템 질은 138개국중 75위에 불과하다. 특히 4차산업혁명에 필수인 정보통신기술(ICT)분야 고도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인재는 30.9%로, 중국(47.6%), 미국(71.2%)보다 낮다.

4차산업혁명시대 미래 인재가 갖출 역량은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다양성의 가치를 조합하는 대안 도출 역량 △기계와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협력적 소통 역량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육 시스템으로는 이런 역량을 기를수 없다.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을 하나 찾는 능력을 문제해결 능력이라 부를 수 없다. 주입식 교육, 결과평가 중심 교육,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교육, 수능 중심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토론식 교육이나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교육, 실수해도 다시 시도하는 도전정신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교육의 질을 전면 검토하고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가장 중요한 인재 역량은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라고 강조하고 싶다. 2017년 사이언스지는 인간의 언어 속 편견이 인공지능(AI)의 행동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AI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편견을 주입하고, 훈련시킨다면 AI가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AI를 학습시키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면 AI 역시 공정하거나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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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포스텍 총장

-AI과 바이오, 정보통신, 소재, 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대한 취임포부를 밝혔는데, 이를 위한 포스텍의 방향과 실천과제는?

▲포스텍은 비영어권국가, 비수도권 소재 대학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30여년만에 아시아권 선도대학으로 성장했다. 다들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포스코와 관련기업, 정부와 경상북도, 포항시 등 많은 관계기관의 협력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포스텍은 앞으로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포항시, 경상북도,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에 필요한 역할을 기꺼이 맡을 각오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바이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BOIC)는 대표적인 사례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라는 최첨단 인프라를 바탕으로 앵커기업이 포항에 연구센터를 설립하면 제넥신과 같은 우수한 벤처기업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운 벤처도 탄생할 것으로 본다. BOIC가 자리를 잡으면 제조업 중심의 경상북도와 포항시도 새로운 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강한 R&D와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과거와 같이 독자적 기술개발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과제들이 복잡해지면서 투자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와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가상·증강현실, 정밀의료 신융합산업, 탄소자원화 등 천문학적 금액이 투자되는 국가 전략 R&D 프로젝트는 한 기업이나 한 연구원이 수행하기엔 복잡다단하다. 한 예로 스마트시티를 연구하고 있는 '포스텍 퓨처 시티 오픈이노베이션 센터'는 산업경영공학과, 창의IT융합공학과, 수학과 등 다양한 전공 교수와 부설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외부 연구 자원을 함께 활용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대학과 산업현장간 괴리감이다. 기업은 여전히 고급 기술인력이 부족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대학들이 갖춘 산학연 협력지원시스템에 대한 대학과 기업의 시선차가 컸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산학협력 연구에 나설 수 있도록 대학은 충분한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연구자 역시 산업체가 무엇이 필요한지 찾는 노력을 해야한다. 기업은 대학과 공동연구에서 더 나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가져야한다.

포스텍은 대학과 기업간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교수로 초빙하고, 교수를 중심으로 해당 기업 연구는 물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는 산학일체연구소를 2016년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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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학 및 산업기술 인력 수준은 어느정도이며, 핵심인력양성과 수급 선순환을 위해 범국가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는?

▲기술인력 수준이 과거에 비해 많이 우수해졌다.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두뇌 유출, 이공계 교육의 질이다. 우리나라 두뇌 유출 양상을 살펴보면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심각한 상황이다. 두뇌유출지수(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130여개 국가 중 43위다. 우수한 인재가 해외로 떠나고 한국으로 유입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은 과학 등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EB라는 비자를 내준다. 지난해 6000명에 가까운 인재가 이 비자를 통해 한국을 떠났다. 이들이 한국에 남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산업계에는 이미 많은 이공계 인력이 진출해 있지만 이들 인력의 준비가 다소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기업도 이들 인력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못갖췄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학에서 덜 준비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점에서 교육계와 대학에 주어진 과제가 크다. 우선 기업과 대학간 괴리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산업현장과 밀접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기술 분야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교육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한다. 여기에 인문과 과학을 모두 아우르는 융합교육도 필요하다. 공공이익과 선을 우선시한다는 윤리와 가치관도 중요한 부분이다.

시대는 급격하게 변하고,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인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런 분야에 충분한 교육 인원을 배정해 인력 수급에 숨통이 트이도록 해줘야한다. 이런 점에서 기존 엔지니어를 재교육해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인력 재교육 프로그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평소 자기주도적 혁신을 강조하는데 기술독립 실천과정에서도 의미있는 제언이라고 본다. 산업계에서 혁신이 자리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자주관리'는 포스코 경영철학 중 하나이다.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소임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 삶이 달라지면서 시장과 사회는 훨씬 복잡해졌다. 당연히 혁신의 방식도 바뀌어야한다. 갓 벗겨낸 가죽(皮)을 무두질해 새롭게 가죽(革)을 만들어내는 것이 혁신인데, 모든 가죽을 똑같은 공정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용액이 달라지기도 하고, 가공법도 사용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혁신도 이처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먼저 파악하고, 강점을 살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 기업체나 기관, 대학을 막론하고, 조직 내부에서는 팀이나 학과 등 단위조직마다 안고 있는 문제나 강점이 각자 다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나 조직의 강점을 먼저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은 현장에 있는 단위조직이다. 단위조직 부터 주도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주관리형 혁신이다. 모든 조직에 이런 방식을 똑같이 적용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단위조직이 가진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하며, 서로 배려하는 자세는 모든 조직에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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