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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머티어리얼사이언스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OLED 재료로 합성 및 분리작업을 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먹거리다. 기술변화와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은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패러다임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 대응해 중소형과 대형 OLED 분야에서 주도적 입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국내 OLED산업을 들춰보면 디스플레이의 핵심, 색을 표현하는 발광재료는 외산이 다수다. 인광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UDC, 350년 역사의 독일 화학 기업 머크, 일본 이데미츠코산이나 JNC 등이 한국 OLED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기초과학으로 다져진 기술력과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가 융합된 결과다.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OLED 소재 개발에 도전장을 던진 국내 벤처가 있다. 주인공은 '머티어리얼사이언스'다.

척박한 국내 소재 산업 환경에서 그것도 글로벌 화학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는 OLED 소재 분야에서 이 회사는 가장 어렵다는 청색 발광재료 상용화를 목표로 나섰다.

◇청색 OLED 소재, 국산화에 도전

OLED에서 청색은 가장 발광효율이 떨어지는 재료다. 100개의 전자가 주입되었을 때 청색 빛으로 발광하는 건 40개에 그친다. 60개는 사라져 효율이 떨어진다.

그 만큼 개선이 시급한 재료지만 효율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선 다른 대안이 없어 효율이 낮은 상태로 OLED에 적용되는 실정이다.

개발에 성공할 경우 시장성이 높아 경쟁이 치열할 것처럼 보이지만 선발주자가 쌓아놓은 특허 장벽이 공고해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 이 분야 가장 앞선 업체로 꼽히는 이데미츠코산은 199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광범위한 특허권을 설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티어리얼사이언스는 2017년 청색 '도판트(dopant)' 기술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도판트는 OLED에서 빛을 내는 소재로 '호스트' 소재와 함께 발광층을 이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회사는 청색재료 분자 설계를 위해 OLED소자의 발광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일에 주력했다. 수많은 재료들 중 적합한 재료를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서다. 또 소자 연구를 통해 설계된 분자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 신규 합성법을 개발했다. 기존 합성법만으로는 경쟁사의 특허를 벗어날 수 없어서다.

오형윤 머티어리얼사이언스 기술최고 책임자(CTO)는 “독자 합성법으로 전에 없었던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외면으로 해외서 먼저 사업화

머티어리얼사이언스는 신생 기업이지만 기술력을 인정받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국 OLED 패널 업체에 다수의 정공수송층(HTL) 재료를 공급했다. OLED를 구성하는 소재는 발광층(호스트, 도판트)를 중심으로 정공수송층(HTL)과 전자수송층(ETL)로 구분된다. 청색 발광소재 개발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회사 운영에 필요한 기반 마련을 위해 시장성,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소재부터 상용화했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 중국 OLED 디스플레이 업체 3곳과 거래를 하며 매출도 100억원대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직 국내 기업과의 거래는 전무하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정해놓은 소재 공급망(SCM)에 변화를 주려 하지 않았다. 신생기업이어서, 소규모 회사라는 이유로 충분한 기술평가도 받지 못했다. 머티어리얼사이언스는 생존을 위해 해외 시장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현재 모습이다.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업계에서도 머티어리얼사이언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한 대기업이 머티어리얼사이언스의 기술 잠재력을 인정해 40억원을 투자했다. 또 청색 OLED 소재 국산화를 위해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궁극 목표이자 지향점인 청색 OLED 발광 소재 상용화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고 걸림돌도 적지 않다. 또 머티어리얼사이언스뿐 아니라 더 많은 소재 전문 기업들이 등장해야 한다. 국내 소재 저변과 생태계가 확대돼야 해외 선발주자들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이순창 머티어리얼사이언스 대표는 “발광층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공통층은 이미 중국의 추격이 시작됐다”며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소재로 차별화를 해 나가야 하는 데 이 모든 걸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효율 청색 소재는 국내외 누구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와 소재 회사들이 협력해 차세대 제품을 개발한다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기술 주도권을 쥘 수 있다”며 정부 지원 및 대기업과 소재 전문 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