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산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파급력을 키웠다. 불매 움직임이 소비재 영역을 넘어 산업계 전방위로 확산되며 장기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본산 맥주·라면·과자 등 식료품 매출이 급감했다. 이마트에선 이달(1~18일) 들어 일본 맥주 판매가 전월대비 30.1% 줄었다. 일본산 라면은 31.4%, 조미료·소스류도 29.7% 감소했다.
편의점에서도 불매 움직임이 포착된다. 같은 기간 CU에서는 일본 맥주 매출은 전월대비 무려 40.1% 급감했다.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생필품부터 일본 제품의 매출 하락세가 뚜렷하다.
서울 시내 한 대형쇼핑몰에선 같은 기간 일본계 패션기업 유니클로와 데상트·ABC마트 매출이 전년대비 15.0% 감소했다. 같은 쇼핑몰 내 입점한 에잇세컨즈와 폴더 등 토종 브랜드의 매출이 29.0%, 12.5% 오른 것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심상찮다.
일본 여행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나투어에선 지난 8일 이후 일본여행 패키지 상품 예약건수가 평소대비 반토막 났고, 모두투어 역시 신규 예약건수가 70% 줄었다. 이미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도 50%나 늘었다.
패키지뿐 아니라 개별 여행객 수요도 줄고 있다. 한 온라인여행사(OTA)에선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일본행 항공권 발권수가 전주대비 30.8%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59.7%나 급감한 수치다. 신규 예약 감소 추세가 지속된다면 9월부터 일본 방문객 수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매운동의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불매운동의 주체가 특정 소비자단체가 아닌 자발적으로 동참한 개개인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8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54.6%가 현재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주만에 참여율이 6.6%포인트 뛰었다. 이들은 '노노재팬' 같은 불매 리스트 사이트를 열어 일본 상품과 대체품 현황을 공유하는 등 불매운동을 체계화하고 있다. 매번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더욱이 단순히 소비 단절을 넘어 '팔지도 않겠다'는 쪽으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담배·맥주·과자·음료 등 100여 품목의 일본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전국 마트협회 회원사 3000여 곳이 불매운동에 동참했고, 2만개가 넘는 중소슈퍼마켓도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대형마트까지 동참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은 지난 9일부터 일본산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매장 내 일본산 134개 제품을 전부 철수시켰다. 평화재단 한 연구원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개별기업에게는 효과적”이라며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정부의 대일 정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간 희비도 엇갈렸다. 롯데는 일본과 합작사가 즐비한데다 지분구조가 얽혀있는 계열사가 많아 불매운동에 유탄을 맞았다. 롯데쇼핑의 주가는 3주 새 13.0%나 감소했고, 롯데칠성 역시 월초 대비 주가가 12.3% 빠졌다.
일본 기업이란 꼬리표까지 붙으면서 정체성 논란마저 재점화 됐다. 유니클로 역시 본사 임원의 불매운동 폄하 발언으로 매출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자 두 차례에 걸쳐 사과 입장을 표했다.
국내 기업은 일부 반사이익을 누린다. 유니클로 에어리즘 대체 상품으로 꼽히는 BYC 보디드라이는 불매운동 보름 만에 쇼핑몰 판매량이 전년 동기대비 220% 증가했다. 신성통상 SPA브랜드 탑텐이 지난 5일 내놓은 광복절 기념 티셔츠도 벌써 1만장 넘게 팔렸다. 이 회사 주가는 이달 들어 23.2%나 뛰었다.
업계에선 불매운동이 과거보다 광범위하고 대체 가능한 국산품까지 안내하는 등 정교화 되면서 국내 소비지형에도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일본 제품을 찾는 수요는 줄고 있지만 동일 상품군의 국산품 매출은 뛰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대체 가능한 국산품을 공유하는 등 근본적인 소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