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근거없는주장" 반박 12일 도쿄 양자협의 앞뒀지만 강대강 대결, 장기전 치달을 듯
우리 정부가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근거를 정면 반박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 근거로 '한국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며 핵심 소재 북한 유출 가능성을 암시했지만 어떤 증거도 없다는 주장이다. 양국은 12일 일본 도쿄에서 양자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단번에 극적인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한-일 경제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의 불화수소 북한 반출 의혹과 관련해 “불화수소의 수입·가공·공급·수출 흐름 전반을 점검한 결과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일본의 의혹 제기는 국제사회 신뢰와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근거 없는 주장을 즉시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수출 규제 조치 근거로 핵심 소재의 북한 유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성 장관은 “일본이 제기하는 의혹에 근거가 있다면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당사국으로서 구체적인 정보를 한국을 포함한 유관 국가와 공유하고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도 이날 국회에서 아베 총리가 대 한국 수출 규제 강화와 대북 제재 이행을 연결 짓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위험한 요소를 내포할 수 있는 말씀”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필요하다. 이번 문제의 소송이 제기된 것도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것도 정부가 원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업 피해를 줄이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경정에 관련 예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라 소재부품 산업 육성이 시급해졌다”면서 “이번 추경에도 정부는 그에 필요한 예산을 국회에 더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외교적 압박도 병행했다. 산업부와 주제네바 대한민국대표부는 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한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문제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 일본 무역제한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는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 측 수출 통제는 WTO 협정상 근거 없는 조치”라며 “일본이 정치적 동기로 무역제한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본이 지난달 29일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주장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며,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무역환경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스스로 뒤엎은 것을 비판했다. 아울러 일본 조치가 글로벌 공급사슬망을 크게 교란하는 행위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하자고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사실상 거부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해 “협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수출 관리를 적절히 시행하기 위한 국내 운용의 재검토다. 철회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 제안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한·일 양국은 12일 도쿄에서 실무자 협의를 한다. 양국은 일본이 지난 4일 조치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와 함께 8월로 예정된 일본의 수출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건에 관해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과의 실무 협상 외 미국과도 접촉한다.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이 11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는 데 이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 한·미 간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문제가 세계 국가 간 교역은 물론 미국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음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경제 전쟁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 이하로 낮췄다. 우리나라가 올해 2% 미만 성장률을 기록하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된 2008년(0.8%)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 또는 1%대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정보기술(IT) 부품·소재 중소기업 269개사 임원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59.9%가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가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수출 제한이 장기화될 경우 이들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응답 기업 10개사 가운데 6개사가 버틸 수 있는 기한을 6개월 미만으로 답했고, 3개월도 버티기 어렵다고 대답한 기업도 28.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