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56>혁신정책, 운영 철학부터 달라야 한다

Photo Image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19일 연구개발특구위원회를 개최해 경기 안산, 경남 김해·진주·창원, 경북 포항, 충북 청주를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강소특구는 기존의 연구개발(R&D)특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규모는 작지만 특성화 분야 중심으로 혁신 밀도를 높인 '작지만 강한' 특구를 말한다. 선정된 6개 강소R&D특구는 이 정책을 통해 선정된 첫 특구다.

어떻게 보면 별반 특출할 것도 없는 이번 지정 결과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자 하는 것은 실상 이번 선정 결과가 혁신 정책 관점에서 생각할 볼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원래 과기정통부는 올 하반기에 2, 3개 정도만 특구로 지정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결과로 보면 신청한 7개 가운데 6개 특구를 선정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당초 계획과는 다른 결과가 대체로 논란거리가 되기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강소특구제도는 분명 혁신을 지향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실상 이번에 신청한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이 같은 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일천한 상황이었다. 이런 여건에서 사업계획서를 상대평가해서 줄을 세워 허가해 주듯 정할 일은 애당초 아니었다. 특히 특구 육성은 장기간 수행 과정에서 수정, 보완, 적응, 적용을 지속해 가야 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초 과기정통부가 제시한 정량 기준을 충족시키느냐로 판단하되 서로 비교해서 이곳은 될 곳, 안 될 곳으로 단정해 발목 잡듯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과기정통부가 지자체와 기술 핵심 기관의 의지를 미리 꺾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스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를 밝게 보는 두 번째 이유는 규제 혁신이란 관점 탓이다. 기존 R&D특구는 국립(연)·정부출연(연) 3개 포함 연구기관 40개 이상, 이공계 학부가 있는 대학 3개 이상 등 지정 조건이 방대했다. 장기 미개발지 문제 등 유연성도 떨어졌다. 대덕연구단지가 30년의 역사를 토대 삼아 2005년 첫 특구로 지정된 후 2015년까지 광주, 대구, 부산, 전북 등 지역 안배하듯 고작 5개밖에 지정되지 못했다.

이 점에서 볼 때 이번 강소특구는 기존 제도가 만든 일종의 제약을 개선하는 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강소특구에 선정될 경우 그 지정 혜택으로 테스트베드나 규제 샌드박스 같은 “규제 혁신 제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도 이 같은 취지를 내포하고 있은 셈이다.

그러니 이렇든 규제 혁신을 추진하면서 또 다른 높은 기준과 촘촘한 조건을 달아 시행한다면 도대체 이 정책을 왜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번 강소특구 선정 결과가 비록 처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오히려 바른 선택이었다고 보는 이유기도 하다.

강소특구 선정 결과를 보며 한편 마음을 쓸어내리는 것은 정부 부처가 자신의 역할을 오랜 관행에서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뭔가를 심판하고 재단하는 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과거 관행과 인식에 매몰될 때 혁신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혁신 정책의 운영 철학을 명료히 하고, 이 철학이 공유되고 실천되도록 해야 하겠다. 혁신하겠다면서 정작 그물코가 더 촘촘한 두 번째 '규제 그물'을 드리워서는 안 된다.

혁신 정책은 배타 성격이어선 안 된다. 우수한 상위 몇 퍼센트를 택하는 것은 혁신 정책의 길이 아니다. 언뜻 성공한 듯 보이지만 실상 새로운 성과는 아니다. 혁신 정책은 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뭔가 좀 부족한 점이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한번 해보자고 하는 그런 선택을 말한다. 조건은 최소화해야 한다. 당연히 실패 사례는 늘겠지만 반면에 성공은 무에서 창조된 그런 성공이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