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곧 임시 이사회를 열고 여름철(7, 8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한다. 이변이 없는 한 가결될 것이기 때문에 각 가정은 7~8월 두 달 동안 약 2만원의 전기요금을 할인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전은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한 차례 보류했다. 여름철 전기 사용 성수기에 요금을 깎아 주면 연 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 모든 부담을 한전이 떠안고 갈 수 없다는 이유가 컸다. 정부 거수기 노릇을 하던 한전이 반기를 든 것은 이례적이다. '오늘은 내가 한 턱 낼 테니 돈은 당신이 내라'는 비상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고요 속 외침으로 들렸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에너지 절약과 저소득층 보호를 목적으로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은 애초의 제도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 1인당 전기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1.3배를 웃도는데 되레 과소비를 장려하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은 '에너지 절약'과 거리가 멀다. 온 국민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이어서 '저소득층 보호' 취지도 무색하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재벌 총수도 할인 대상이다. 정부의 '생색내기 쇼' 이상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전 내부에서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은 비정상에 가깝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진정으로 사회 약자를 배려하는 제도라는 데 공감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11년 만의 폭염으로 긴급히 전기요금을 할인해 준 것이라면 올 여름이 오기 전까지 1년 동안 좀 더 체계화된 개편안을 마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서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바늘귀에 꿰기 어렵다고 해서 허리춤에 대충 매어 바느질을 하면 실이 곧바로 바늘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급해도 기준과 원칙이 무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이 원래 취지와 부합하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또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 배려 계층을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지 곱씹어 봐야 한다.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 할인을 받는 기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전기요금 감면이 절실한 가정이 혹시라도 나로 인해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할까 심히 우려된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