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창업 기업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고객이 누구고 자신의 시장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착각하는 일이 많다. 이러한 모습은 스타트업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가능하다.
창업 초기에는 자신의 사업 모델을 내부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서 혹은 외부로부터 투자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사업계획서 상에는 기업이 타깃으로 생각하는 시장과 고객 규모가 명시돼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설립 이후 예상 매출 추이를 함께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 사업계획서 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장과 고객의 규모는 과대평가돼 있는 경우가 흔하다.
전문적인 시장분석 능력이 부재한 창업가가 시장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료는 경제연구소나 금융권 등에서 작성한 보고서 수치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 보고서는 특정 사업 모델을 추정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가 아니라 해당 산업군 내지 지역 등의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들 보고서에 제시된 고객 내지 시장 규모 중에는 해당 스타트업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 고객과 시장이 다수 내포돼 있다.
예를 들어 자가용 승용차 튜닝 관련 창업을 기획하고 있는 예비 창업자는 자동차 관련 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에서 국내 자동차 전체 튜닝 시장과 관련된 자료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핵심 고객층과 시장 규모를 추출하는 톱다운 방식의 시장 규모를 추정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전체 튜닝 시장 중에는 경주용 자동차를 위한 튜닝 시장과 냉장 및 특장 차량을 만들기 위한 튜닝시장, 캠핑차를 만들기 위한 튜닝시장 모두 포함된 수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시장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 이 같은 톱다운 방식의 시장 규모 추정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잘못된 사업규모 예측은 사업 실패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매출 및 판매 추이를 과대 책정하게 되면, 이는 당연히 과잉 투자로 이어지고, 그 결과 손실이 발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부푼 꿈을 갖고 참여한 창업 초기 동료들이 사업 자체에 커다란 불신과 실망감을 갖게 돼 창업팀 자체가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적정 시장 규모를 산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사업 분야에 따라 최적화된 방법은 다르지만 톱다운 방식보다는 바텀업 방식의 시장 규모 추정이 더욱 효과적이다. 바텀업 방식은 실제 고객 수를 기준으로 이들의 구매율과 제품 단가를 곱해서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 규모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내용이 실제 제품을 구매해 줄 고객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앞서 예시한 승용차 튜닝 시장의 경우, 핵심 고객층은 비교적 나이가 젊은 20~30대 남성 고객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20~30대 남성 모두가 고객일 수는 없다. 창업 초기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창업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일정 구간 안에 위치한 20~30대 남성 고객이 실제 고객층일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차량을 튜닝할 때 평균적으로 얼마의 비용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한번 튜닝을 한 뒤에 다시 튜닝을 하러 찾아오는 주기는 얼마나 걸리는지 등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규모를 산출한다. 이러한 방식이 바텀업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앞서 예시한 톱다운 방식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시장 규모와 고객 규모를 산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사업계획서를 작성함에 있어 적정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창업자가 있다면, 관련 보고서를 찾기 보다는 자사의 제품을 구매해 줄 핵심 고객부터 떠올려 보길 권하고 싶다.
박정호 KDI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