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 고용정책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2년 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월급도 주지 못 할 거라면 직원을 고용하지 말라'는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말과 같다. 기업이 수익을 내야 급여를 줄 수 있는데, 이제 시작하는 벤처기업에 직원 급여를 먼저 보장해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 52시간 근무제 이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제도 도입 일정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정부는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도 버거운 주 52시간 근무제를 벤처기업이 이행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벤처기업은 사람을 쓰기도 힘들고, 마음껏 일할 수도 없게 만든 경직된 고용정책을 혁신성장 걸림돌로 꼽았다.
◇고용정책에 52.7%가 부정적…1년 새 부정 평가 늘어
전자신문과 벤처기업협회가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문재인 정부 고용(일자리) 정책이 기업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52.7%가 '부정적(매우 또는 다소)'이라고 답변했다. '매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27.8%를 기록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대해 44.2%가 '부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부정 평가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정부 고용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배경으로 고용정책 실패에 따른 고용참사가 거론된다. 2년 새 29%라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중소·벤처기업 부담을 불러왔다. 이는 고용 침체, 악화로 지표화됐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 기자회견에서 “고용지표가 부진해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픈 점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경제정책 기조를 통해 의욕 넘치게 시작했지만 소득주도성장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강행으로 역풍을 맞았다. 문 대통령이 가장 중시해 온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분배 등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취업자는 9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작년 실업률은 3.8%로 2001년(4.0%) 이래 가장 높았다.
작년 4분기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계층 사이 소득 격차는 2003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커졌다. 1분위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17.7% 감소한 반면에 5분위 소득은 10.4% 증가한 결과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도 “제조업과 도·소매업 고용 감소세가 이어져 40대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것은 몹시 아픈 부분이다. 고용 시장 밖으로 밀려났거나 소득이 낮은 취약계층의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고용 상황을 직접 챙긴 '일자리 대통령'이지만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52시간제, 업종·규모별 차등 적용 요구 높아
'주 52시간 근로제도와 관련해 벤처기업에 가장 시급한 보완책'(복수응답)으로는 '업종·규모별 차등 적용'이 가장 높은 42.6%를 차지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20.4%), 선택근로제 확대 적용(19.4%), 적용·처벌 시기 유예(14.1%)가 뒤를 이었다.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벤처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 답변이 39.2%를 차지해 부정 답변(23.8%)을 앞섰다. 탄력근로제 적정 단위기간은 1년 이내가 45.6%, 6개월 이내가 30.4%를 기록했다. 현행 3개월을 유지하자는 답변은 24.0%가 나와 개선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은 주52시간 근무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연 근로제 관련 시급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연 근로제에 대한 기업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강제하지 말고 노사 간 합의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관련 특정 업종 예외 적용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SW기업과 영세기업에는 주 52시간제가 무의미하고, 신규사업이나 신장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주 52시간으로는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저임금 상승은 원가 상승과 수출 가격경쟁력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분야·규모별 최저임금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소·벤처기업 근로자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반적인 정책 수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현실에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이미 한 달 전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뒤 결정체계 개편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기다려왔으나 국회 처리가 늦어지면서 내년 최저임금도 기존 방식으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꿔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정부 셈법이 꼬였다.
탄력근로제 확대 역시 주 52시간 계도기간이 지난 3월 말 종료되면서 현장 혼란과 불법 조장을 막기 위해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여전히 불투명하다.
함봉균 정책(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