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A 씨는 하루 일을 마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허기가 밀려옴을 느낀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 최근 집 근처에 평소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는 지인 말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꺼내 프랜차이즈 음식점 위치와 도보 경로를 검색해본다. 많은 정보를 청각에 의존해야 하는 A씨에게 시끄러운 거리에서 스마트폰 사용은 쉽지 않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처럼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은 앱을 사용할 때는 더 힘들다. '최소한 앱 주요 버튼이 어떤 버튼인지 설명하는 레이블(음성 안내)라도 제공됐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인이 설명해 준 위치를 떠올리며 겨우 음식점에 도착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보아도 카운터에서 주문을 접수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키오스크 조작 소리가 들려온다. A씨는 음식점, 티켓 발권 등을 중심으로 늘어가는 키오스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시각장애 사용자를 고려해 설계하지 않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에게 주문을 대신 부탁할까 생각했지만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A씨는 결국 음식점을 돌아 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시행된 지 11년이 지났다. 장차법 제정 당시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CT)에서 장애인이 차별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관련 내용이 법안에 담겼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도 A씨처럼 상당수 장애인은 제대로 웹사이트나 모바일 사이트를 이용하기 어렵고 키오스라는 새로운 장애물까지 맞닥뜨린다. 장차법이 실생활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 민간 인식 개선과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장차법은 장애인 정보 접근권 보장을 규정한다. 개인·법인·공공기관은 장애인이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이용하고 접근함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차별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제20조·정보접근에서의 차별금지). 배포하는 전자정보 등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하도록 문자, 한국수어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한다고 명시했다(21조·정보통신·의사소통 등에서 정당한 편의제공의무).
이 조항에 따라 장차법 시행 후 공공·민간 등 웹사이트에 웹접근성이 의무화됐다. 웹접근성은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는 장애인이나 누구든 차별 없이 접근하고 공유해야한다는 의미다. 웹접근성을 보장해줘야 차별 없이 누구나 정보 공유와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2010년 이후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모바일 접근성 중요성도 강조됐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장애인 누구나 정보를 접하는 환경을 마련해야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법 시행 11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여전히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지난해 발표한 '2017 정보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사이트(1079개) 접근성(100점 만점)은 평균 61점에 그쳤다. 2016년과 비교해 2.2점 향상한 수준에 그쳤다. NIA가 조만간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지난해 역시 2017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바일(152개)도 상황은 비슷하다. 평균 78.3점으로 웹사이트에 비해 높지만 2016년에 비해 0.4점 하락하는 등 개선되지 않았다.
시각(전맹, 저시력), 상지(관절, 근육, 뇌병변 등) 장애인이 직접 평가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민간 분야별 웹사이트(99개)와 모바일 앱(43개)을 사용해 본 결과 과업성공률(원하는 기능 사용)은 웹사이트 평균 58.9%, 모바일 앱 평균 71.7%를 기록했다.
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쇼핑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에스앤씨랩이 대형 쇼핑 사이트 웹접근성 조사 결과 20군데 가운데 웹접근성 마크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시각장애인연합회가 2016년 조사 결과 70여개 온라인 사이트 웹접근성 점수는 평균 60.2점으로 전체 민간 사이트에서도 하위권을 기록했다.
법 시행이 더딘 이유는 인식 부족뿐 아니라 처벌이 과태료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민간 등이 웹접근성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개선권고, 법무부 시정명령을 거쳐 최고 30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한다.
법 시행 후에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장애인 단체가 나섰다. 201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대한항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등 대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분야별 집단소송이 이어졌다. 2017년에는 한 시각장애인이 청와대 홈페이지가 웹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전문가는 웹접근성 인식개선 노력과 가이드라인 제작·배포 등으로 웹접근성 준수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빠르게 바뀌는 ICT 환경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기업과 정부 노력이 동반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단체 정보접근사용포럼은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과 웹, 모바일 접근성 지침 등이 마련됐어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적다”면서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주거 시설과 ICT가 활발히 결합되지만 이 역시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돼 시각장애인 중에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난방을 가동하지 못하거나 출입문을 열지 못하는 사례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혜택이 보다 다양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민관이 함께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는데 힘을 모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