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조원에 이르는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내년도 예산을 잠정 동결했다. 연구과제중심운영제(PBS) 개선과 관련해 출연연의 미래 사업 계획, 수익 구조 포트폴리오 수립이 교착에 빠지자 극약 처방을 내렸다.
18일 관가, 출연연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국가 연구개발(R&D) 중기 재정 소요 상 내년도 출연연 예산을 동결했다.
R&D 중기 재정 소요는 각 부처가 향후 예산 항목을 예측한 자료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지출 한도를 설정하기 전에 제출한다.
과기정통부가 출연금 예산을 동결 제출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통상적으로 부처는 미래 예산을 추산할 때 소관 기관이 요구하는 증가 수요를 반영한다. 적게는 수%에서 많게는 수십%에 이르는 인상안을 제출한다. 이후 기재부 등과 조정 과정을 거쳐 최대한 인상분을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중기 재정 소요를 제출하면서 대다수 출연연 출연금을 동결시켰다. 일부 출연연 시설비 인상분을 소폭 반영하긴 했지만 전체 출연금 규모는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과기정통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출연연은 총 25개이며, 올해 출연금 규모는 약 1조9000억원이다. 출연금은 기관의 실운영비인 경상비와 인건비, 기관 고유 연구를 지원하는 주요사업비, 시설비 등으로 구성된다. 출연연은 출연금에 외부 과제 수탁을 더해 기관 연구비, 운영비를 확보한다.
출연연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내년 예산 동결 지침을 전달했다”면서 “R&D와 무관한 일부 시설비 등을 제외한 예산 항목이 거의 동결됐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가 동결 조치를 내린 이유는 출연연 PBS 개선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0월 출연연에 역할·의무(R&R)를 새로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수익 구조 포트폴리오를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향후 주요사업비 재정 소요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대다수 출연연이 이행하지 못하면서 교착에 빠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5개 내외 출연연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주요 사업 영역을 재설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수익 구조 포트폴리오도 수립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리 예산을 가늠해 추산하기 어렵다”고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중기 재정 소요 예산이 그대로 본예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미래 청사진을 제대로 그린 출연연 예산 수요는 본예산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출연연은 과기정통부가 사실상 최후통첩을 내린 것에 당혹해하고 있다. 출연연 고위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예산 동결에 나설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이행할 것으로 예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기관 R&R와 수익 구조를 설정하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관 예산 수요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