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은 모두 '혁신'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주요 경제 모토로 혁신 성장을 표방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경제 위기를 겪은 직후 한국은 정보기술(IT) 변화와 혁신을 흡수하면서 IT 강국이 됐다. 그 이후에도 혁신이란 화두는 국가 과제가 아닌 적이 없다. 혁신은 한국 경제 존립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상황을 보면 핀테크, 빅데이터 등 혁신 용어만 난무하는 말잔치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를 주제로 한 세미나, 심포지엄, 콘퍼런스가 개최되고 있을 것이다. 민간에서는 관련 협회, 정부에서는 위원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자격증도 나올 것 같다.
정작 알맹이는 없다. 실제 혁신이 없기 때문이다. 혁신은 말만으로 해결될 리 없다.
혁신이 가능하려면 다음 세 가지 요건이 모두 만족해야 한다.
첫째 혁신과 관련된 산업의 기득권자가 없어야 한다. 기득권자는 반드시 혁신에 저항한다. 기득권자라 해서 대기업 같은 경제 강자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자는 중소기업일 수도 있고 자영업자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교육 방식 및 교육 기관 혁신에 대해 기득권자일 수 있다. 택시가 교통수단 혁신에 대해 기득권자임은 분명하다. 기득권자는 대체로 다수이며, 금력 또는 재력과 권력이 있다.
반면에 혁신자는 극히 소수고, 매우 영세하다. 혁신에 대한 기득권자 저항은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법제를 결정하는 정부와 국회가 평소 혁신이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그렇게도 외쳐 대던 혁신이 나오면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과연 정부와 국회가 혁신자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둘째 혁신 사용이나 파급을 금지하는 규제가 없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기득권자 문제와 관련이 깊은 경우가 많다. 규제 핵심은 정부 인허가에 있다. 인허가는 이를 득한 업자의 상업 활동, 영리 추구 행위를 법 테두리에서 규정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매우 강하게 보호하기도 한다. 다른 진입자가 나오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은행업 혁신 기술이 있는 혁신가라 하더라도 새 은행을 설립해서 운영할 수 없다. 현행법상 은행업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절차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시간도 상당하다. 인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짙다.
조선 시대 후기에 시전상인이라는 상인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난전을 금하는 이른바 '금난전권'을 행사했다. 이는 그들이 조선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합법 권리였다. 난전을 시장질서 교란 요소로 규정하고 금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독과점 지배력과 경제력을 공고히 했다. 이처럼 한국 경제도 알게 모르게 혁신 금지 법제가 많다.
마지막으로 유연한 법 체제가 필요하다. 금융 기법 혁신을 이룬 자(핀테크 기술 개발자)가 사업을 하려면 그것이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 파악해서 법인 등록과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은행, 증권, 보험 등으로 등록하고 인허가까지 받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 분야에서 고른다면 대부업체 정도일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핀테크가 중요하다고 서로 목소리만 높였지 정작 핀테크 업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법체계 전반은 미비하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역시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몇 년이 흘렀다.
한국 경제에서 위 세 가지 요건 성립 여부를 따져 보자. 매우 불행하게도 한국 경제에서는 요건 가운데 단 하나도 통과할 수 있는 게 없다. 단 하나라도 안 되면 혁신은 불가능한데 세 가지 모두 안 되는 구조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경제에서 혁신은 절대 불가하다고 장담한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bink1@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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