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호황기를 보낸 디스플레이·반도체 업황이 식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은 투자가 침체한 지 오래됐고, 반도체는 고점 논란이 일면서 주요 제조사가 투자를 지연하는 기류를 보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은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하다.
전방기업의 투자 정책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후방기업은 생존 대책이 필요하다. 매출과 고객사 다변화, 사업 다각화, 신기술 연구개발(R&D)이 대표 사례다. 항상 거론되는 문제 해결책이지만 실제 이 대책을 모두 실천한 후방기업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간 핵심 협력사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에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을 공급했고, 이 관계가 일회성이 아닌 장기 공급망으로 변화하면서 불거졌다. 워낙 디스플레이 업황이 침체한 탓에 “협력사도 먹고살게끔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도 나왔다.
어려운 시기에도 인수합병(M&A) 기회를 포착하거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는 후방기업도 많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준비한 신제품과 신기술로 성장 기회를 만들려는 시도도 눈길을 끈다. 기업인을 만나면 “언제 우리 사업이 쉬운 적도 있습니까”라고 종종 말한다. 업황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기업은 항상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앞으로 위기는 더 이상 과거와 유사한 위기가 아닐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거대 변수가 된 중국이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폐쇄형 협력사 생태계, 일감 몰아주기 등 케케묵은 악순환 고리는 아직도 단단하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방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깨뜨리지 못한 잘못된 관습과 인식을 변화시켜야 할 때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지만 아직도 사업 환경은 뒤처져 있는 국내 생태계 관습은 혁파해야 한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