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혁신 아이디어 산실 '규제 샌드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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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 건설기계 업체 대표 K씨. “장비 기동성이 떨어져서 무조건 트레일러로 옮겨야 한다”는 고객 불만을 듣고 무릎을 쳤다. 오랜 연구개발(R&D) 끝에 자체 이동이 용이한 융·복합 중장비를 개발했다. 그러나 판로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현행 규정에는 새로운 장비에 맞는 기술 기준이 없어서 허가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판매 계획을 접으려던 K씨는 어느 날 '규제 특례제도'라는 것을 접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소관 부처에 자료를 제출하고 기다린 지 며칠 후 담당 사무관으로부터 심의위원회에서 2년 동안 판매해도 좋다는 임시허가 통지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규제에 막혀 거의 포기한 일이 서류 제출 몇 개월 만에 해결된 것이다.

K씨 사례는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내년 1월부터는 현실화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과 구역 내에서 규제를 면제 및 유예해 주는 제도다. 어린이들이 모래밭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듯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출시 가능성을 자유롭게 타진해 신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취지다.

영국은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핀테크 활성화를 끌어냈다. 일본, 싱가포르, 호주, 덴마크, 스위스, 캐나다 등도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초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 지역특구법 개정안 등 규제 혁신 3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 소비자, 규제 당국 모두에 이로운 제도다. 기업은 실제 환경에서 실증 테스트를 해보고 신기술 도입에 따른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소비자는 안전하고 신속하게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 받으면서 선택권이 넓어진다. 정부는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규제 체계를 정교하고 스마트하게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 규제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가 성공하려면 고려할 사항도 많다. 규제 샌드박스는 사람이 거주하는 실제 환경에서 아무 규제 없이 시행된다. 이에 따라 기업은 사전에 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생명·안전·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테스트를 통해 차차 보완하겠다'는 안일한 태도는 버리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정부 역시 규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갖추는 일은 소홀히 하지 말고, 특례 제도를 통해 기업과 함께 규제 애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 초기에 원활히 운영되도록 하위 법령 정비, 가이드라인 작성 등 제도 설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정부와 기업 현장 간 중간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신산업 규제 해결에 필요한 소통 창구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선 기업 대상으로 규제 샌드박스의 내용과 기대 효과를 적극 알려서 참여를 끌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청 및 심사 절차 등 각종 행정 처리가 짐이 되지 않도록 기업 의견을 정부에 잘 전달할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으로 앞으로 규제 혁신을 안전하게 진행할 합리화 여건이 마련됐다. 기업, 소비자, 규제 당국 등 여러 참여 주체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노력한다면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의 안전한 혁신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hakdokim@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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