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벤처 현장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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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통계청 자료(2015년 기준)에 따르면 창업 이후 3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기업은 40%, 5년 이하는 27% 정도이어서 선진국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일까. 신제품의 진출을 가로막는 규제 탓도 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매수 주문으로 구매 장벽을 넘지 못해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는 데다 스케일업 단계에서 금융 지원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투자자는 3~5년 정도를 내다보며 수익을 기대하고 있어 이 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금을 회수해 가는 식이어서 벤처기업은 기업공개(IPO)나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생산 활동을 이어 간다. M&A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대기업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우 투자금 회수 기회가 적다는 이유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벤처기업과 연구 현장을 둘러보면서 현장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밤을 낮 삼아 문제를 해결해 가던 현장들은 주 52시간 근무 등의 영향으로 '오늘 일은 오늘 마치자'는 다짐이 한낱 옛 구호로 들려오는 듯 했다. 현장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우리나라가 외국산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외국산을 구매할 때면 서류를 요구하지만 국산 제품에는 터무니없는 자료를 요구해 온다. 주문서를 어렵게 구성해서 국산품 납품은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외국 제품을 파는 기관은 국산과 경쟁할 기회가 없어 '사 가려면 사 가라'는 식으로 별 신경도 안 쓰지만 잘 팔리고 있다. 국산 제품이 외국산에 비해 떨어지지 않은 만큼 일부러 회피하지 않도록 구매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공공기관 평가제도에 국산 사용 정도를 반영하면 기관 자존심도 살리고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둘째 정부가 신기술 개발품 구매를 크게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만 조성해 주면 기업 스스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나가는 순기능 효과를 볼 수 있다. 기계류, 의료기기 분야는 더욱 그렇다. 연구개발(R&D)을 늘려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는 부분'은 지원을 중단하고 시장을 열어 주는 쪽으로 돌리는 게 더 낫다. 연구중심 병원에서 약 10%만이라도 국산 의료기기 사용을 의무화하게 하고 서로 평가를 해 주면 우리 의료기기도 곧 성공한다.

셋째 정부의 R&D 지원은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첨단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이 약한 분야는 최첨단이 아니라 기본을 보강하도록 지원해 줘야 한다. 기본이 부족한데도 최첨단을 강조하다 보면 수박 겉핥기 식이어서 아무 쓸모가 없다. 정부는 기본을 강하게 하는 R&D 지원 역할을 해 주면서 지원 성격이 R&D 자금인지 R&D 프로젝트인지 기업보조금인지 기초체력 다지기인지를 명확히 해서 지원해야 한다.

넷째 연구 프로젝트 운영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연구책임자가 모든 책임을 지다 보니 요즘은 연구 과제를 수주하려 들지도 않고, 수주해 온 과제도 연구 책임자를 서로 회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관장은 물론 연구진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종합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또 책임을 크게 강조하다 보니 안정된 연구에 안주하거나 연구하지 않고 적당히 버텨 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다. 예전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다. 요즘 연구 현장에서는 과는 피하려 하고 공을 탐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공과(功過)를 엄격히 다뤄야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노조가 해결해 준다는 그릇된 생각에 간부 말이 전달되지 않는 희한한 현상이어서는 안 된다.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다섯째 국가 연구는 실용화에 염두를 둔 기술을 개발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2년 전 중국 의료기기가 동남아 지역에서 급부상하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열린 의료기기전시회(CMEF)를 둘러본 적이 있다. 중국 의료기기가 급부상한 이유는 중국 정부가 완제품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자국 기업에는 구매와 인증이 쉽도록 차별 지원한 덕이었다. 비록 첫 번째 제품이 엉성해도 성과로 인정해 주며 계속 지원하다 보니 이제는 값싼 가격과 병원 내 적용 경험을 무기로 세계 기업보다 더 유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외형보다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찾아내 개선해 나가면 머지않아 우리 산업도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김영식 한국기술벤처재단 이사장·전북대 석좌교수 most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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