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중세 유럽에서 국정 활동 전반을 성직자가 도맡던 때가 있었다. 막강한 힘이 따랐다.
추기경 능력에 따라 당시 국정 업무가 좌지우지됐다. 빈민 구제와 국정 안정보다 자신이 누릴 혜택과 보신주의만 생각한 '불량 추기경'이 결국 국가까지 망가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제로페이' 사업에서 이런 모습이 묻어난다. 해당 사업은 소상공인의 든든한 힘이 되겠다며 시작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어느 사업보다 더 많은 의견 수렴과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나 업계 의견에는 귀를 닫고 정당한 비판에는 관련 기업이나 단체의 입단속으로 대응한다. 이 때문에 특정 기업 뒷배 논란까지 회자된다.
현장에선 제로페이 사업에서 주무 부처인 중기부를 배제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조성됐다.
그동안 사업 추진 상황에 허점이 많다. SPC 설립 등 모든 운영을 외주에 의존하지만 업계 교감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정책도 수시로 바뀐다. 협력 관계에 있는 서울시마저 중기부의 비전문가 행태에 '답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민간 기업과의 이상 기류도 감지된다.
카카오페이가 제로페이 사업 참여 이전에 시장에 보급하던 10만여 QR단말이 문제가 됐다. 중기부는 제로페이 관련 코드 경쟁을 금지시켰다. 즉 제로페이에 참여하는 사업자가 자체 QR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카카오페이는 중복 투자가 될 수 있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결국 중기부가 제로페이 코드 경쟁 금지를 철회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연내 시행이라는 목표를 위해 과정과 절차, 시장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왜 사업을 시작했는지 목적은 사라지고 목적지만 남았다.
QR코드 운영 방안에 대해 중기부 담당 부서를 접촉했다. 담당 과장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기능에 대해 (언론에)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문의가 너무 많아서 피곤하니 취재하지 말라는 것이다.
올바른 정책 추진을 위한 견제와 비판은 언론의 존재 이유다. 주요 사업에 대한 문제 지적이 부담스러운 것도 이해하지만 다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정책 담당자의 소통 방식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