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카풀 논쟁 관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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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근무했을 때다. 우버는 기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었다. 영어에 두려움이 남아 있을 때 말할 필요도 없이 목적지에 신속·정확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복잡한 도심이나 인적 드문 주택가에서도 버튼 한 번이면 우버가 눈앞에 왔다. 요금도 등록한 카드에서 바로 결제되니 시비가 발생할 일도 없다.

카카오가 T크루를 모집하자 택시업계가 들고일어났다. 핸들을 놓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나아가 운수사업법 내 '출퇴근 시간 카풀 허용'을 폐지하라고 소리쳤다.

이번 파업 전에 취재를 위해 '카풀 반대'라는 스티커를 붙인 택시에 수도 없이 올라탔다. 그들은 입을 모아 죽겠다고 이야기했다. 사납금에 치이고 꼴불견 손님 때문에 힘들단다. 택시 운전을 막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이해는 된다. 종일 도로에서 고생하고 밤길 취객과 씨름하는 등 힘겹게 사는데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면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쉬운 대목은 반발만큼 택시가 모든 이동성에 대한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중교통도 아니다. 모빌리티 서비스라는 범주에 속해 있는 다양한 이동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승차 거부는 여전하다. 난폭·과속 운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납금 부담이 없는 개인택시 기사는 수요가 적은 평일 낮에 나와서 손님이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밤에는 일하기 힘들다고 나오지 않는다. 한정된 개인택시 번호판은 점점 노령화가 심해지고 있다. 시민 안전 문제가 걸린 문제인데 방법이 없다. 택시는 변하지 않으면서 요구만 한다.

정치나 행정은 국민의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가져오지 않아도 이동 자유와 선택권을 시민에게 온전히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항상 지난 이전 서비스와 대립해 왔다. 그러나 진보는 갈등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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