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빅데이터산업 농부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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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선진 기업은 왜 자사 보유 학습 알고리즘을 공개할까. 역설이지만 AI 학습 경쟁력은 국가와 기관에서 보유하는 빅데이터에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매장량이 늘어날수록 정보 가치가 높아지는 습성을 보인다. 최근 독창성과 통찰력 바탕으로 한 다양한 분석 기법을 활용, 사회 문제나 정책 방향 해답을 찾아낸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병으로 발생 사회 불안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 최종 종식선언이 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지만 3년 전 메르스 사태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2015년 5월 20일 첫 환자 발생 후 38명이 목숨을 잃었고, 1만6000여명이 격리됐다.

200일 이상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부, 공공, 민간 등이 혼연일체가 돼 한 단계 개선된 대응 태세로 임했다. 필자가 속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의약품안심사용서비스(DUR)도 감염 의심자 추적, 관리에 즉각 투입됐다.

DUR는 원래 병원이나 약국에서 의약품을 처방·조제할 때 환자 투약 이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됐다.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금기약, 중복 처방 제재 등을 의사와 약사가 사전 점검해서 약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중동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이 발열을 동반한 기침, 호흡 곤란 등 증세로 병원을 찾았을 경우 방역 당국이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DUR는 심평원이 운영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낳은 자식 가운데 하나다. 심평원은 전국 9만여개 의료기관이 보내오는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심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의료 질을 평가한다. 전 세계에서 10여년 동안 국민 의료 데이터를 보유한 국가는 몇 안 된다. 더욱이 의료 데이터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켜 활용하는 나라는 더 드물다.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쌀에 비유된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국민건강 증진에 활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다국적 컨설팅사 딜로이트는 2020년 세계 건강관리 시장이 8조7000억달러(약 9400조원)로 세계 반도체 시장(4500억달러) 20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관한 한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출발선부터 몇 걸음 앞서 있는 셈이다.

최근 정부는 글로벌 데이터산업 육성 조성을 위해 2022년까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5만명을 양성하는 데이터고속도로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심평원이 보유하는 진료 정보 및 의약품 정보 가운데 개인정보를 제외한 총 65종에 이르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2013년부터 임상 연구자와 산업체 빅데이터 분석 담당자 등 대상으로 보건의료빅데이터 전문가 양성교육을 진행한다.

앞으로 과제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라는 농사를 잘 지어 국민건강 증진에 활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먼저 정부, 학계, 산업계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사회 합의가 이뤄지면 심평원은 보건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빅데이터 산업 발전을 이끄는 농부가 될 것이다.

과거 종이로 된 청구 서류를 처리하던 시절에 시작해 오늘날 선진국 보건의료 전문가가 견학을 오는 첨단 시스템을 구축한 심평원은 그럴 능력과 열정이 있다.

김승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stkim@hi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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