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기존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개념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국가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과 정책 연구·지원이 중요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떠오르는 융합신산업이나 첨단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여러 규제가 걸림돌이 되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지역 사회와 노동자 건강, 환경 문제 등으로 제조기업이 지켜야 하는 환경 규제 등도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산업 발전은 지원하되 규제 수준을 균형 있게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에서 제조업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총 부가가치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 일본, 미국, 중국보다 높다. 지식 서비스 산업이나 금융 산업이 성장하면서 제조업이 국가 총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은 총 부가가치 29.5%가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첨단 제조업도 못 피한 규제
디스플레이 패널을 생산하는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중국 광저우에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여러 암초를 만났다. OLED는 국가 핵심기술로 해외 생산하면 자칫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산업부 판단이 지연되면서 내부적으로 국내 투자 방안도 검토했지만 딱히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새로 공장을 지으려면 현실적으로 4~5년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넓은 부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부지를 확보하더라도 산업용 전기와 용수를 충분히 확보하고 지역 주민의 반대와 민원 등까지 모두 해결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다. '타임 투 마켓'이 생명인 설비 투자에서 이 같은 문제로 현실적 대안을 도출하기 어려웠다.
삼성전자는 평택 반도체 공장 확충을 앞두고 송전탑 설치 문제를 겪고 있다. 평택에 현재 1개 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했고 추후 4개까지 확대할 계획이어서 충분한 전기가 필요하다. 추가로 송전탑을 지어야 하지만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혀 애를 먹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후방산업에 속하는 장비 기업은 최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따른 탄력근로제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려달라고 일제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설비를 발주하면 정해진 기간 안에 제품을 만들어야 하므로 작업량이 불규칙하게 늘어나는 업종 특성 때문이다. 장비 제작·납품기간이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0개월까지 이어지는 만큼 탄력근로제 기간을 늘려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한국에서 첨단 제조업은 규제가 집중된 서비스업에 비해 그나마 규제 영향을 덜 받는 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3년 OECD 상품시장규제(PMR) 지수 분석에서 OECD 가입국 중 네 번째로 규제가 엄격하다고 나타났다. 지표 수치가 낮을수록 규제 수준이 낮아 혁신 분야에서 민간 투자가 늘고, 신규 기업 진입이 증가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PMR 지표가 높다고 조사됐다. 교역과 투자 장벽은 2013년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환경 규제, 보호와 성장 간 균형 필요
한국 산업계는 과도한 환경 규제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준수하기 위해 아직도 적응 중이다. 기업 현실에 맞게 조금씩 세부 규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환경 보호와 산업 성장 간 균형을 잃은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산업체에서 작성한 화학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정보 외부 공개 여부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기업은 영업기밀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고 정보공개를 청구한 근로자와 일부 언론은 국민 알 권리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삼성전자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전문위원회 소속 위원은 혀를 내둘렀다.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 '지나치게 상세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디스플레이 전문위원회의 한 위원은 “법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자칫 주요 기술이 경쟁사나 해외로 빠져나갈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면서 “환경과 노동자 건강은 보호해야 하지만 불필요한 정보까지 상세하게 포함돼 있어 개별 기업 핵심기술이 노출되고 국가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