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규제는 산업 활성화와 투자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 대표적인 게 통신비 규제다.
올해 4월 대법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신사업자 통신요금 산정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민간 기업 요금 원가를 공개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 통신사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대법원 판결은 통신서비스가 '공공재'임을 일부 인정했다는 점에서 통신사와 시민단체, 정부 모두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보편요금제 도입 논의가 시작된 이후 통신서비스가 공공재인지 논란이 재점화되며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통신은 규제산업이다. 특히, 이동통신은 한정된 국가 자산인 주파수를 이용하며 공익적 목적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규제가 당연시 여겨졌다. 전기통신사업법에도 기간통신사업자 대상 다양한 규제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규제 강도는 논란이 됐다.
특히 통신비 규제를 둘러싸고 정부가 민간 기업 서비스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는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됐다. 대법원이 통신의 공공성에 힘을 실어주면서 향후 통신비 규제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부가 통신 요금을 결정하고 통신사업자 원가를 강제로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적 통신 강국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건 기술적 발전에 비해 법·제도는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신 규제가 효율성과 정당성을 갖추려면 통신의 공공재·필수재 논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 통신사가 기간통신사업만 영위하던 시절이 이미 지난 만큼, 공공재의 구체적 정의와 범의가 논의돼야 한다.
통신 서비스 중심은 음성통화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했다. 데이터 중심 시대에는 과거에 생각하던 공공재의 범위가 달라져야 한다. 가령 모바일 메신저가 공공재·필수재로서 규제 대상이 돼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공공재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규제 범위를 설정한다면 규제와 반발 등 소모적 논란을 막을 수 있다. 통신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통신 규제도 마찬가지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