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ICT분야 최저가 입찰제, 왜 근절 못하나…계약 예규 동반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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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정보통신기술(ICT)업체 A사는 최근 한 공공기관에 레이더 센서 제품을 납품하려다 낙찰자 선정방식 확인 후 좌절했다. 레이더 센서는 소프트웨어(SW) 기술을 적용한 ICT 융합제품이지만 일반 물품 구매로 분류됐다. 공공기관은 구매 입찰 시 2단계 최저가 경쟁입찰을 적용, 사실상 가장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발주했다. A사는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최저가 경쟁입찰 대상이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공공 고객 확보를 위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공공 최저가 입찰제도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ICT 분야에서는 '2단계 최저가 입찰제도'가 시행된다. 업계는 공공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2단계 최저가 입찰을 지속하면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종합심사낙찰제, 소액 공공물품 조달 시 최저가낙찰제 폐지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최종 계약은 발주처가 진행·책임진다. 기획재정부 등 주무부처가 전 발주자를 관리·감독하기란 쉽지 않다. 하드웨어(HW) 융합형 SW(임베디드, 레이더, 센서 등)와 ICT 융·복합 분야에서 최저가 입찰이 근절되도록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 발주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계약 세부규정을 개선하는 등 실질적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산 절감'으로 시작한 최저가 입찰제, 해외는 탈피 중

정부, 공공기관 등 공공 발주처가 사업 수행 또는 물품(서비스) 공급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은 △수의계약 △협상에 의한 계약 △2단계 최저가 경쟁입찰 △지명경쟁입찰 등이다.

단순 물품 제조구매(센서 등 시스템 ICT 융합 제품 포함)는 2단계 최저가 경쟁입찰 적용이 가능하다. 기술을 평가해 일정점수 이상 득점자 선정 후 2단계에서 최저가를 제출한 기업을 낙찰자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예산 절감'을 이유로 건설 공사를 비롯해 대부분 공공 발주에 많이 적용됐다. 1단계 통과 후 2단계에서 최종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에 얼마나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지가 관건이다. 품질·기술력보다 낮은 가격이 우선되면서 산업계 수익 구조 악화와 최종 납품 품질 저하 논란이 지속됐다.

최저가 입찰제는 과거 해외서도 빈번했다. 미국도 과거 가격만을 기준으로 낙찰자를 선택했다. 최저가격으로 낙찰자 선정 후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낙찰가격으로 공사가 시행되지 않았고 계약변경으로 가격 상승이 일상화됐다. 최종 지불액이 당초 예산보다 웃돌고 납기도 늦어지는 등 발주 체계 전반에 변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영국도 최저가 수주 후 계약 변경 등으로 오히려 최종 계약 금액이 상승하거나 업계 수익이 악화되는 등 문제에 봉착했다.

미국과 영국은 가격 중심 입찰 제도를 기술과 상생 중심으로 바꿨다. 미국은 가격 외 기술력, 기업 실적, 재무 요건 등 전반을 고려하는 '최고가치(Best Value)' 개념을 도입해 최저가 논란을 벗어났다. 영국도 '공공-민간 파트너십(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계약을 마련, 저가 수주를 없애고 발주자와 수주자 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최저가 입찰제, 왜 끊지 못하나

국내도 가격 대신 기술과 가격을 종합 평가해 최고 득점자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강조했다. 협상에 의한 계약 대상 범위도 확대했다. 국가계약법상 계약이행 전문성·기술성·긴급성·공공시설물의 안전성 및 국가안보 목적 등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발주기관은 협상에 의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특히 SW, 운영시스템, 국가정보화사업 등 ICT 분야는 협상에 의한 계약을 '우선'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최저가 입찰로 인해 ICT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2단계 최저가 입찰제는 여전히 적용 중이다.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2·5호선 철도통합망(LTE-R) 사업을 '2단계 최저가 입찰'로 발주했다. 산업계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최저가 입찰로 최종 진행했다.

2단계 최저가 입찰은 기능이 단순하고 보편화된 제품을 구매할 때 주로 적용한다. ICT 분야에 랜(LAN)이나 IP텔레포니 등 단순 ICT 물품 구매 시 사용됐다. 예산과 입찰 기간을 동시에 줄인다.

LTE-R사업처럼 통신망 연동, 관련 SW개발 등 고도 기술이 접목되는 경우 최저가 입찰이 적용되기 어렵다. 최저가로 망 사업을 진행할 경우 기술보다 가격으로 사업자를 선정, 품질 저하 논란도 지속된다. 그러나 발주기관이 2단계 최저가 입찰 방식을 고수하면 제재하기 어렵다. 발주기관이 최종 입찰방식 결정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주자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최저가 입찰을 진행하더라도 제재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ICT 분야처럼 기술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도 발주자가 기술력보다 예산절감을 우선시할 경우 서울교통공사 유사 사례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융·복합 ICT 시대, 촘촘한 제도 시급

ICT 2단계 최저가 입찰은 SW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SW개발 등 정보화 영역은 2005년 이후부터 최저가 입찰 문제가 꾸준히 개선됐다. 국가정보화기본법, 정보통신산업진흥법,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등 관련 법에서 정의하는 사업과 서비스는 최저가가 아닌 협상에 의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정의한다.

업계는 관련 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ICT 분야 등에 협상에 의한 계약을 적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우선 적용할 수 있다'고 표현해 발주자에 차선책 선택 여지를 남겼다. 의무조항이 아니라 권고 수준이기 때문에 발주처가 반드시 법안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

SW 역시 마찬가지다. 하드웨어(HW)에 SW가 포함된 일체형 장비는 SW가 아니라 HW 등 단순 물품 구매로 취급 가능하다. 임베디드 SW, 시스템 SW 등 최근 융·복합 ICT 장비가 증가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미비하다.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계약 예규 개선이 시급하다. 협상에 의한 계약이 필요한 ICT 사업 종류와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한다. 관련 사업 역시 '할 수 있다'는 권고가 아니라 의무로 명시돼야 한다.

업계는 ICT 2단계 최저가 입찰을 줄일수록 고용 상승효과도 동반된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가 진행한 '종합심사낙찰제도 고용영향평가 연구'에 따르면 종합심사낙찰제 공사가 최저가 낙찰제 공사보다 고용 효과가 38%가량 높았다. 협상에 의한 계약도 종합심사낙찰제처럼 가격과 기술을 종합으로 평가, 산업 발전과 고용 상승까지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2단계 최저가 입찰제는 ICT 산업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고 저가·출혈 경쟁을 조장한다”면서 “발주자가 예산 절감 효과보다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과 산업 전반 발전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최저가 입찰제 폐지 관련 제도 등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이를 어길 경우 가해지는 제재 등은 미약하다”면서 “융·복합 ICT, 임베디드 SW 등 최근 변하는 산업에 맞춰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이 두루 적용되도록 부처 모니터링과 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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