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0년 넘게 단절된 과학·정보통신기술(ICT) 표준 학술 교류를 재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과학기술과 ICT 부문 남북 협력 청사진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은 28일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시 멍두메이 호텔에서 정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조선문정보처리기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행사는 31일까지 나흘 동안 열린다.
북측에서는 최순영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보화 국장을 비롯해 10여명이 참석했다. 북한 국가과학기술위는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연구개발 사업 등을 주관하는 중앙 행정기관이다. 우리 측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동북아ICT포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글정보화포럼 관계자 등이 자리했다.
북측은 조선어로 작성된 방대한 연구 논문과 서지 정보 검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용어 정비, 처리 엔진 개발 등을 발표했다. 발표 후에는 데이터베이스(DB) 처리 방식을 두고 남측 전문가 질문에 답변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남북은 행사 계기로 ICT 분야 공동 표준 제정을 전제로 관련 용어 통일 논의 등을 시작한다. 한글 키보드 표준 제정 등도 의제에 포함했다. 장기간 표준 교류가 중단됐기 때문에 관련 용어 등 현황 확인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이 남측과 과기·ICT 표준 학술대회에 공동 참석한 것은 10여년 만이다. 남북 ICT 학술 교류는 2001년 동북아공동체 ICT포럼 전신인 '통일 IT포럼' 결성 이후 활기를 띠었다. 2007년 11월에는 옌볜에서 북한 IT 관계자를 초청, '동아시아 IT포럼'을 열었다. 남북과 중국 3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해 △리눅스 기술 소개 및 공동 협력 방안 △리눅스와 산업응용소프트웨어 △동북아 리눅스 기술 협력 및 인력 양성 방안 △언어와 IT 표준공동체 형성 과제 △정보통신서비스 시스템 등을 세부 주제로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듬해 평양에서 ICT 콘퍼런스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남북 관계 경색으로 무산됐다.
올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관계 개선에 힘입어 북한과의 교류 재개 분위기가 조성됐다. 과기계는 이번 행사가 남북 4차 산업혁명 분야 협력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측이 과학기술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북한도 통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할 텐데 이러한 분야 남북 표준이 다른 것도 맞춰 나가자”고 제안했다.
과기계 관계자는 “과거 남북 ICT 교류 때 북측이 SW 등 특정 분야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북한이 최근 정보화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서 투자를 늘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 분야에서 실질 협력이 가장 활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옌지(중국)=박정은기자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