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재료 회사 동진쎄미켐은 최근 고객사로부터 초기 버전의 이머전 노광 장비를 구매했다. 노광 공정용 감광액을 개발하려면 이런 장비가 없으면 안 된다. 매번 고객사에 샘플을 전달해서 평가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연매출 7000억원이 넘는 동진쎄미켐 정도 되니 비싼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연매출이 3000억원 미만인 장비 재료사는 엄두도 내지 못 한다.
반도체 장비재료부품 테스트베드 논의도 이 때문에 나왔다. 양산 라인과 동등한 수준의 시설을 갖춰서 장비 재료 회사가 마음껏 신제품과 신재료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이 일부 자금을 지원하면 이런 테스트베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조만간 세부 로드맵이 나올 것이다.
이런 정책 방향에는 큰 틀에서 동의하지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 나노팹은 지역 특색으로 운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무원 조직처럼 운영되는 나노팹은 경쟁력이 없다.
민간이 다 맡는 것도 답이 아니다. 인천 송도 지멤스가 대표 사례다. 대규모 국가 자금이 투입된 송도 지멤스는 반도체 테스트 소켓 전문 회사 ISC가 뛰어들어 민영화됐지만 제대로 된 수익 한 번 내보지 못했다. 사실상 폐업 상태다. 손실액만 수백억원이다.
얼마 전 ISC는 지멤스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지분을 모두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NIPA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분 매각 조건을 검토하고 있다. 지멤스는 민영화되자마자 그곳 건물이 있는 땅 1만2000여평을 인천시로부터 매입했다. NIPA 지분을 모두 돌려받은 ISC가 그곳에 연구개발(R&D) 조직을 심을지 땅과 건물을 3자에게 되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ISC가 지멤스 토지와 건물을 되팔면 적잖은 시세 차익을 거둘 것이다. 그 재원이 최근 분양 받은 판교 제2테크노밸리 사옥 신축에 활용된다면 또 다른 국가 나노팹 실패 사례로 남을 것이다. 지금 시도하는 반도체 장비재료부품 테스트베드는 이런 길을 걸으면 절대 안 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