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 장관 수행 규모를 축소한다. 해외 순방 참여 내각 규모를 줄이고 그 기간 내각 운영에 충실하라는 주문이다. 일각에서는 획일화된 제한은 정보통신·산업 기술 세일즈 외교에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3일 청와대 및 정부 부처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실이 해외 순방에 부처 장관 동행 규모를 최소화한다”면서 “이달 인도·싱가포르 국빈 방문부터 적용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해외 순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빠지지 않고 공식 수행원에 포함됐다. 그 외 각종 경제·산업 협력 양해각서(MOU) 교환을 위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도 수시로 동행했다.
청와대는 오는 8일 시작되는 인도·싱가포르 국빈 방문부터 장관 참여를 줄인다. 김동연 부총리와 백운규 장관은 동행하지 않는다.
인도와 싱가포르는 문 대통령 신남방 정책과 연계된 주요 국가다. 한국과 산업 협력 지평 확대, 미래 지향 협력 방안 등이 핵심 논의 안건이다. 산업부는 장관 대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차관급)이 수행, 실무 협력을 맡는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정보통신·과학 기술 분야 협력 과제로 말미암아 수행 여부를 조율하고 있다.
이 같은 청와대 방침은 각 부처 장관이 문 대통령 해외 순방에 참여하기 위해 벌인 소모성 경쟁에 따른 것이다. 장관이 수행원으로 따라가도 공식 일정이 한두 가지에 그치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 같은 수행은 비생산이라고 판단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순방 참여 여부를 놓고 장관끼리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소모성 경쟁이 발생했다”면서 “외교상 크게 중요하지 않은 협력안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청와대에 올리는 사례 빈번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지난번 러시아 순방에서 6개 부처 장관이 참여하기 위해 경쟁하는 등 회의 시각이 많았다”면서 “일정을 놓고 부처 간 잡음까지 나와 청와대에서 장관 동행을 줄이기로 교통정리했다”고 설명했다.
부처 운영에 내실을 기해 달라는 측면도 있었다. 최근 국내 경제가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핵심 경제 정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각 부처에 국내 기업·산업 현장을 적극 방문,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해외 순방 참여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총리는 지금까지 문 대통령 10차례 해외 순방에서 다섯 차례 수행했다. 지난해 세 차례, 올해 베트남·아랍에미리트(UAE)와 최근 러시아 국빈 방문에 함께했다.
김 부총리는 문재인 정권 초반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늦게 임명되면서 그 역할을 대신, 해외 순방 수행이 잦았다. 최근 청와대 경제 라인이 새롭게 정비된 것과 맞물려 해외 순방 역할이 정리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 정책실과 김 부총리 간 세 다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부처 장관이 대통령 국빈 방문을 계기로 펼칠 수 있는 실질 외교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 국빈 방문 외교는 상대국과 교역 협상에서 중요한 행사다. 각 부처 장관은 순방으로 이뤄지는 실질 협력 논의에서 '플러스 알파'를 확보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 순방 성과와도 직결된다.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취지는 알겠지만 순방 참여 문을 좁히면 그만큼 양국 산업 교류와 협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세일즈 외교가 성과를 내려면 산업·경제계는 물론 부처 수장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