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부 IT서비스 사업은 '아직도 왜'

얼마 전 일이다. 중소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 A사 대표와 저녁을 함께했다. 오랜만에 만난 A사 대표는 지친 모습으로 저녁자리에 나왔다. 회사 운영에 한계가 왔다고 힘들어 했다.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투자를 잘 못 받았나. 내부 횡령 사건이 생겼나. A사 대표는 궁금증이 증폭될 즈음에 고민을 털어 놨다.

A사는 최근 한 공공기관 사업을 수주했다.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매출 규모를 키울 수 있어서 좋아했다. 공개 경쟁 입찰로 수주한 사업이어서 뿌듯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도 큰 이견 없이 진행됐다. 착수보고서를 제출했고, 사업 착수를 목전에 뒀다. 어느 날 발주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공공기관 간부와 차 한잔 하자는 것이다. 착수보고서에 맞게 자료를 갖춰서 발주 기관을 방문했다. 그런데 기관을 방문해서 들은 얘기는 A사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과업 변경을 요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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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보고서에 담은 수행 내용 변경은 물론 제안요청서(RFP)에도 없는 것을 요구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준비한 것을 상당 부분 조정해야 했다. 비용도 크게 늘어나지만 공공기관과는 추가 비용 논의가 없다. 난감한 상황에 처했지만 과업을 변경했다. 완료 시점인 현재 해당 사업은 당초 예산보다 절반 이상 비용이 추가됐다. 적자 사업이 됐다.

정부가 과업 변경 시 추가 적정 대가 지급 명문화를 뼈대로 하는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을 개정한다. 정부가 '아직도 왜'라는 TF를 구성, 고질화된 공공 IT 시장 문제를 뿌리 뽑기로 한 결과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과업 변경에 따르는 적정 대가 산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왜일까.

첫째 발주 기관 담당자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다. 상당수 발주 기관 담당자는 사업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사업을 왜 하는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는 물론 기본 취지와 목표를 모르기도 한다. 상세 RFP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제안 업체에 휘둘리기도 하고 발주 기관 간부 한마디에 과업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발주 기관 담당자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 적어도 사업을 왜 하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사업자는 방법론상 아이디어를 제시할 뿐이다.

둘째 예산이다. 과업이 변경되면 비용이 늘어난다. 수행업체는 RFP에 맞춰서 준비했는데 이를 변경하거나 추가하면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업을 변경(추가)했다고 해서 적정 대가를 추가 지급하지는 않는다. 예산은 당초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최근 국방부 IT 사업이 논란화 됐다. 예산 300억원 사업이 과업 변경으로 500억원까지 늘었다. 국방부는 기존 예산에서 추가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발주 기관의 '투철한 갑' 정신이다. 발주 기관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수행 업체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리한 요구라 하더라도 수행 업체는 따를 수밖에 없다. 수행 업체 프로젝트매니저(PM)는 이러한 일을 쉽게 겪는다. 발주 기관 간부 '기침'은 수행 업체에 '태풍'이라는 말도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발주 기관 담당자가 수행 업체 PM을 '쥐 잡듯 쪼았는데'도 문제가 불거지면 간부는 '그냥 한번 해본 말'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번 만큼은 뿌리 뽑는다고 한다. 말뿐이 아닌 현실 정책이 되기를 바란다. 현장에서도 '정부가 정말로 제대로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해 주기 바란다.


신혜권 기자 hk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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